[김형경의 책vs책] 파우스트와 거래한 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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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의 사람들, 원제 People of the Lie
스콧 펙 지음, 윤종석 옮김
비전과 리더십, 360쪽, 1만2000원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 원제 The Man without Shadow
콜린 윌슨 지음, 이광식 옮김
푸른숲, 390쪽, 5000원.

바야흐로 ‘공포’가 잘 팔리는 계절이 왔다. 무서운 것을 워낙 싫어해서 ‘스릴과 서스펜스……’라는 말만 들려도 멀찌감치 도망치기 때문에 내가 아는 무서운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나마 베스트 3을 꼽으라면 패트릭 쥐스킨트의 『향수』, 스콧 펙의 『거짓의 사람들』, 콜린 윌슨의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가 있다. 특정한 저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 그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세 권 모두 그들의 저서를 따라 읽는 연장선상에서 만났다. 그 중 스콧 펙과 콜린 윌슨의 책은 공포뿐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비의와 맞닥뜨린 듯한 두려움을 오래 안겨주었다.

스콧 펙은 『끝나지 않은 길』에서 처음 만났다. 그 책은 1960년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정신분석을 대중화한 책으로 알려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끝나지 않은 길』의 속편에 해당하는 『우리가 바꿔야 할 세상』과 저자의 자기 분석을 담고 있는 『거석을 찾아서, 내 영혼을 찾아서』도 타인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매혹적이고 유익한 책이었다. 그 다음에 출판된 책이 『거짓의 사람들』이다.

내가 이 책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저자가 문득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는 합리적 이성의 저자는 간데 없고 ‘악령’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어떤 사람들을 특별히 ‘악한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비과학적 태도를 지닌 사람이 등장한다. ‘이 책은 위험한 책이다’라고 저자가 서문에서 경고한 것처럼 이 책에는 그가 치료에 실패했던 ‘악한 사람’들의 사례, 결국 그들이 악령에 들려 있다고 믿게 되는 과정, 악령을 퇴치하기 위해 기독교 엑소시즘 현장을 참관하며 ‘마귀와의 전투’를 기록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는 자신의 경력이 모조리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인간 악의 존재에 대해 알리고 그것과 맞서 싸우고 싶었다고 한다.

콜린 윌슨은 매혹적인 문예 비평서인 『아웃사이더』에서 처음 만났다. 그 책의 속편에 해당하는 『독수리와 집게벌레』, 문예창작론인 『소설의 진화』 다음으로 만난 책이 『어느 철학자의 섹스 다이어리』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소설을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고 영국에서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제목은 ‘그림자 없는 사나이’였다. 미국에서 출판되면서 주인공 이름을 따서 ‘제럴드 솜의 섹스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바뀌었고, 국내에서 출판될 때는 우리 실정에 맞게 또 제목이 바뀌었다.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 역시 이 책에서 저자가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그는 예리한 통찰력과 독특한 감수성으로 문화 산물들을 새롭게 읽어내는 비평가였는데 이 책에서는 문득 병리적이고 신경증적인 모습을 보인다. 섹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병리적 징후도 문제지만 그 관심이 블랙 매직이라는 비의적인 세계와 합치되면서 더욱 불길해진다. 책 말미에는 블랙 매직을 실행하는 장면이 오감을 모두 자극할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그 대목이 공포스러움의 압권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후 저자가 발표하는 책들이다. 『불가사의 백과』『잔혹』『살인백과』같은 책을 만날 때마다 그의 의식이 어느 음침한 세계를 떠돌고 있는지 궁금해지곤 한다. 스콧 펙은 『거짓의 사람들』 이후 새롭게 펴낸 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해 보면 스콧 펙은 콜린 윌슨의 블랙 매직에 등장하는 인물 같고, 콜린 윌슨은 스콧 펙의 엑소시즘에 등장하는 환자 같다. 두 책에서 보이는 저자들의 변형된 의식과 행태가 두려운 것은 거기에 삶의 핵심을 꿰뚫는 비밀이 내포되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어떤 사람들은 삶의 한 시기에 마치 누군가와 영혼을 거래한 듯한 변화를 보이는가. 비엔나의 정신분석의 롤로 메이는 한 사람의 운명을 다스리는 정령, 정신적 자질이나 재능 등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다이몬’이라는 용어로 명명한다. 다이몬은 창조적일 수도 있고 파괴적일 수도 있는 힘이며, 한 인간의 삶의 비밀은 다이몬을 의식 속으로 통합해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한다. 롤로 메이 식으로 말하면, 두 사람은 자신의 다이몬을 의식 속으로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 수 있을지.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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