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채 집계방식 바꿔 따져보니 해외 돈놀이 물린돈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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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늦게나마 국제통화기금 (IMF) 의 요구에 따라 외채통계 집계방식을 바꾼 것은 한국의 외채통계에 대한 국제금융가의 불신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세계은행 (IBRD) 방식대로 외채를 계산해 발표해 왔기 때문에 국제기준에 어긋나는 점이 없다고 버텨왔다.

실제로 상당수 선진국들도 이 방식에 따라 외채를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한국이 외환부도의 위기에 몰려있다는데 있다.

계산 방법이 중요한게 아니라 외국인들이 빚을 갚으라고 일시에 몰려들 경우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할 실제 외채규모' 가 얼마냐가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국제금융가에서 한국 금융기관의 해외지점 현지 차입금이나 역외 금융 등을 문제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국내 은행 등의 해외지점이 외국에서 빌린 돈은 현지에서 어떤 형태로든 운용되고 있기 때문에 외채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빚을 갚으라고 하면 해외지점이 내준 대출을 회수하거나 부동산을 팔아 갚으면 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책임질 빚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은행.종금사 등이 역외계정으로 빌린 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제금융가의 시각은 다르다.

국내 금융기관 해외지점과 역외 차입금은 상당부분이 투자를 잘못해 물려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빚을 갚으라고 하면 부도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럴 경우 국내 은행 본점이나 궁극적으로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는 "한국 금융기관의 모든 빚을 보증하겠다" 고 공표했었다.

반면 그동안 문제됐던 국내기업 해외지점.현지법인의 현지금융과 국내 금융기관 해외지점의 현지 예수금 등은 외채통계에서 빼기로 합의됐다.

예컨대 외국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공사를 위해 현지에서 빌린 돈은 해당 업체가 갚아야할 빚이지 한국 정부 책임은 아니라는 것을 IMF도 수긍했다는 것이다.

또 국내 은행 해외지점의 예금 등은 인출사태가 나도 해당국가의 예금보험기관이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튼 이번 조치로 한국 외채통계에 대한 국제금융가의 불신은 상당부분 해소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이런 지적을 무시해 외채가 중복 계산되고 국내기업 현지금융까지 모두 단순 합산돼 한국의 외채가 2천4백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소문만 나돌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외채통계를 이렇게 바꾸기로 한 데는 나름대로 갚을 자신이 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큰 관건은 만기 1년미만의 단기부채인데 11월말이후 20일 만에 1백20억달러나 갚았고 내년 1~2월에 돌아올 단기부채도 미국.일본 등의 협조융자와 국채발행.외국 민간자본 유치 등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일단 외환위기를 벗어났다는 인식만 국제금융가에 심어주면 현재 국내 금리나 환율수준으로 봐 외국 투자자금의 대거 유입이 이뤄질 것으로 바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새 외채통계에 대한 국제금융가의 반응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국내기업의 현지금융을 외채에서 뺀 것 등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부분을 앞으로 한국 정부와 IMF가 어떻게 설득해 내느냐가 한국 외환위기 탈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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