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한국 휴대전화, 그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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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안승권 LG전자 사장은 450여 명의 국내외 기자 앞에 손목시계 모양의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이어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와 영상통화를 시작하자 곳곳에서 탄성이 일었다. 모토로라와 소니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3대 휴대전화 업체가 된 LG전자의 기술력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LG전자가 21일 내놓은 1분기 영업실적은 세계적 불황의 늪에서 선전하는 한국 휴대전화의 성적표다. 이 회사는 1분기에 2260만 대의 단말기를 팔아 3조9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부문 영업이익이 2600억원이니까 영업이익률이 7%에 육박한다. 단말기를 만드는 경기도 평택 공장은 직원들이 하루 두 시간 특근을 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일찍이 세계 2위 휴대전화 업체가 된 삼성전자의 약진도 인상적이다. 1분기 세계 시장점유율이 19%에 달할 전망이다. 애니콜을 만드는 경북 구미공장은 지난해 9월 이후 평균 가동률이 100%를 넘어섰다. 고성능 스마트폰인 ‘옴니아’의 해외 판매량이 250만 대를 넘어서고 국내에선 풀터치 스크린폰인 ‘햅틱’ 시리즈가 150만 대 팔릴 정도로 고급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삼성과 LG만 보면 휴대전화 업계만 호황인가 싶지만 외국 업체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핀란드의 세계 최대 휴대전화 업체 노키아는 1분기 순이익이 1억2200만 유로(2000억원)에 그쳤다는 우울한 소식을 지난주 내놨다. 전년 동기의 10분의 1 수준이다. 휴대전화 판매량도 9320만 대로 2007년 2분기 이후 처음으로 1억 대를 밑돌았다. 시장점유율은 1년 동안 4%포인트 가까이 떨어져 37%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승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터치스크린폰이 대세가 된 시장의 추세 변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너무 중저가 제품에 치우친 전략을 구사해 불황 여파에 맥없이 흔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니에릭슨의 1분기 판매량은 1450만 대로 지난해 4분기보다 무려 1000만 대 가까이 줄었다. 3억 유로(약 50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동반했다. 내년까지 전체 인력의 40%에 달하는 4000명을 줄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세계 시장점유율 10%를 넘보던 미국 모토로라는 시장점유율이 반 토막 나면서 지난해 10월 3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올해에도 4000여 명을 더 줄일 예정이다. 그나마 지켜온 자국 휴대전화 시장의 정상 자리마저 지난해 3분기에 삼성전자에 내줬다. 1분기에는 LG전자에까지 밀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1강 1중 3약’에서 ‘2강 1중 2약’으로 바뀌는 세계 휴대전화 업계의 재편을 한국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 휴대전화는 왜 강할까. 우선 발빠른 신시장 선점 전략을 꼽을 수 있다. 소니에릭슨은 한때 10% 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바짝 추격했다. 하지만 ‘사이버샷폰’ 같은 몇몇 인기 제품에 너무 의존하다 변화의 활력을 잃고 있다. 모토로라가 ‘레이저’의 성공에 너무 안주해 신제품 개발 시기를 놓친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에 비해 한국 업체들은 시장의 변화를 읽거나 변화를 주도하는 데 능했다. 다양한 터치스크린폰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을 이끌었다. 한편으론 저가폰을 내세운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는 신흥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노키아는 프리미엄 제품군 영역에서 삼성 등 한국 업체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 업체들의 현지 밀착 마케팅도 큰 힘을 발휘한다. 삼성은 미국 최대의 자동차 경주대회 ‘나스카 500’과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팀을 후원하고, LG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원(F1)’ 스폰서로 나섰다. 디자인도 한국 제품의 큰 강점 중 하나다. 함영호 LG전자 MC디자인연구소장은 “내수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한국 제품의 전반적인 디자인이 외국 제품보다 한 단계 올라갔다”고 덧붙였다.

다만 환율 요인이 가실 경우 2분기에도 현재와 같은 영업 우위를 지켜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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