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범호가 1회 만루 홈런을 치고 있다. 그의 개인 통산 6호 그랜드슬램이다. [김민규 기자]
산 넘어 산, 김태균 넘어 이범호다.
21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히어로즈-한화전. 히어로즈 선발 마일영은 1회 초 무사 만루 위기에서 한화 4번 타자 김태균(27)에게 1타점 내야안타를 맞았다. 이 정도면 마일영이 선방했다고 생각된 순간, 5번 타자 이범호(28)의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았다. 우타자 이범호는 마일영의 바깥쪽으로 낮게 떨어진 초구 체인지업을 밀어쳤다. 높이 뜬 타구는 오른쪽 폴 안으로 휘어들어갔다. 스코어는 순식간에 5-0. 일찌감치 한화의 승리를 예약한 만루홈런이자 개인 통산 6호 그랜드슬램이었다. 지난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공동 홈런왕(3개)에 올랐던 이범호의 위력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한화는 8-4로 승리해 4연패 수렁에서 벗어났다.
2003년 한화 지휘봉을 잡고 있던 유승안 현 경찰야구단 감독은 이범호를 한 달 가까이 2군에 내려보냈다. 유 감독은 2군 경기에서 이범호의 홈런 소식이 들려와도 “하루에 좌월 홈런 세 개를 때려도 1군에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밀고 당기는 요령을 체득해야 일류 타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이범호는 이듬해인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연속 20홈런 이상을 때려냈다. 이미 정상급인 파워에 요령까지 붙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범호는 새로운 타자로 거듭났다. 홈런 19개 중 밀어쳐 때린 우월 홈런이 10개나 됐다. 어느새 약점이 줄어들어 김태균과 ‘쌍포’를 이뤄도 손색없는 타자로 성장한 것이다.
이범호는 “스프링캠프에서 우중간으로 밀어치는 훈련을 많이 했다. 배팅 포인트가 뒤에 있어도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어깨를 폈다. 이어 “아무래도 WBC 참가가 큰 도움이 됐다. 타석에 설 때마다 ‘내가 더 나은 타자가 될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