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산책] 포항 우승 숨은 공신 박항서 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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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6월 14일 인천 문학경기장. 축포가 터지는 가운데 히딩크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시원하게 벗겨진 그의 이마에 키스했다. 포르투갈을 꺾고 조 1위로 한.일 월드컵 16강에 오른 순간이었다.

# 2004년 6월 27일 포항 축구전용구장. 종료 휘슬이 울리자 포항 스틸러스 최순호 감독은 그를 부둥켜 안았다. 프로축구 K-리그 전기 리그 우승. 9년 만의 우승이었다.

"월드컵 때의 영광이야 이루 말할 수 없죠. 하지만 제겐 포항의 이번 우승이 더 의미있어요. 후배 감독과 일하면서 팀의 조직력을 다진 자부심이지요."

지난해 7위였던 포항이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숨은 공신 박항서(45)코치. 서열이 철저한 축구계에서 3년 후배인 최 감독을 2년째 보좌한 그다. 평소엔 "순호야" "형님"한다. 하지만 선수들 앞에선 칼같이 깍듯하다.

"지난 시즌의 부진 때문에 최 감독이 퇴진 압력을 받았을 땐 저도 밤잠을 설쳤어요. 악역을 마다 않고 선수들을 독려했지요."

올해 막강해진 포항의 수비력은 그의 지도 때문이라는 게 안팎의 평가다. 그는 이번 우승으로 "인생의 세번째 낭떠러지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첫번째는 3년간의 수원 삼성 코치 생활을 접고 '백수'가 됐던 2000년. 국내에서 자리를 못 찾아 브라질과 유럽 클럽을 전전하며 1년간 연수를 했다. 두번째는 2002년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직을 석달 만에 중도 하차했을 때다. "히딩크 감독이 떠나고 맡은 자리라 부담이 컸죠. 감독 경험도 없었고. 성적 부진(아시안게임 3위)보다는 축구협회와의 관계를 잘 풀지 못했던 것 같아요."

"히딩크 감독께는 가끔 연락드립니다. 본프레레 대표팀 감독이 선임된 다음날도 전화 드렸어요. 포항이 국내 리그에서 1등을 하고 있다고 하니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체코에 잇따라 0-5로 지는 상황에서도 골프를 즐기는 히딩크에게 "골프를 치지 말라"고 공손하지만 매섭게 조언했던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축구는 경신고 1학년 때 시작했다. 1973년 경남 산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한 학교다. 들어가 보니 축구부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축구를 좋아했기에 축구부에 들었지요."

포지션은 미드필더. 남보다 늦게 시작했기에 1년을 더 다니며 진짜 열심히 했다. 고단한 축구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키(1m65cm)는 작았지만 힘은 장사였다. 한양대(77학번) 축구부 시절 건국대 운동부와 함께 교련 훈련을 갔다가 씨름 내기가 붙었다. 머리 둘은 더 큰 농구선수를 보기 좋게 메다꽂았다. 대표팀 코치 때도 선수보다 왕성한 체력을 보였다. 머리숱이 적어 붙여진 '밧데리'란 별명이 '힘이 장사'라는 뜻으로 와전된 것도 이때다.

그는 이산가족의 가장이다. 85년 5월 결혼한 부인 최상아(43)씨는 서울에, 그는 포항에, 고교생인 외아들은 미국 동부에 유학가 있다. 아들에겐 "힘든 축구 빼고는 뭐든지 하라"고 한다. 특별한 취미가 없으니 가끔 친구들과 소주로 적적함을 달랜다. 선수와 코치로서 두루 우승을 경험했지만 아직 못 이룬 꿈이 있다. "올해 구단과 계약이 끝나면 이제 감독 경험을 쌓고 싶네요." 언젠가 23세 이하 대표팀을 다시 맡아 명예회복을 하고 싶어하는 그다.

글=강혜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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