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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정상문이 받은 15억 2~3년에 걸쳐 돈세탁한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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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차명 계좌들이 새로운 의혹으로 떠올랐다. 이 계좌들을 통해 관리된 15억여원의 조성 경위와 돈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가 핵심 수사 대상으로 부각됐다. 대검 중수부는 20일 그중 12억5000만원이 청와대 공금을 횡령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돈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관련됐을 수 있다고 의심한다. 검찰 관계자는 “그 돈의 실체는 봉하마을 쪽에서 누구보다 더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비가 내린 20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경찰이 순찰을 돌고 있다. 검찰은 소환 시기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김해=송봉근 기자]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서 횡령한 12억5000만원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을 함께 관리해 왔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문제의 자금은 2~3년의 돈세탁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용된 것보다 남아 있는 돈이 많다”고 덧붙였다. 제3의 인물이 돈의 실제 주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제3자의 돈 의심=검찰이 의혹의 뭉칫돈이 정 전 비서관 개인의 자금이 아닐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2006년 8월을 전후해 정 전 비서관이 조성한 이 돈은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다. 불법 자금을 조성하고도 마음대로 손을 대지는 못한 것일 수 있다. 이 돈은 또 양도성예금증서(CD)나 무기명 채권 등의 형태로 관리됐다가 다시 현금으로 바뀌어 계좌에 입금되는 등 복잡한 세탁 과정을 거쳤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보안상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봐 왔던 돈 세탁 유형과 다른 면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권양숙 여사가 “3억원을 내가 받아 썼다”는 허위 진술을 하면서까지 정 전 비서관을 보호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말 못 할 다른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권 여사가 정 전 비서관의 비자금에 대해 모든 책임을 떠안으려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수사팀의 판단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의 비자금이 파악될 수 있는 단서를 사전에 차단하려 한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홍 수사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을 묻는 질문에 “지금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답변을 피했다. 그는 그러나 “(이 돈은) 수사 과정에서 의미가 있는 불법 자금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자금 사용처를 따져 보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시기를 늦추는 것도 차명 계좌에 대한 추적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두 번째 영장=정 전 비서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21일 열린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 구속 여부가 이번 수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9일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노 전 대통령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노 전 대통령을 사실상 정 전 비서관의 공범으로 적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권 여사가 등장하면서 구속영장이 기각됐고 수사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검찰은 이번에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권 여사의 주장을 ‘허위 진술’이라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의 문재인 변호사는 “(3억원을 권 여사가 받았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검찰이 말하는 계좌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를 불러 외환 거래 내역에 대해 캐물었다. 또 2006년 노 전 대통령의 딸과 사위가 미국에 체류하면서 사용한 계좌 내역을 살펴보고 있다. 검찰은 이들 계좌에 박연차 회장이 청와대로 보낸 100만 달러 중 일부가 입금됐는지를 조사 중이다.

김승현·정선언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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