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일본 지방선거 ‘정당 실종’ … 무소속 22곳 전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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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도쿄에서 북서부 방향으로 300㎞가량 떨어진 도야마(富山)시. 모리 마사시(森雅志·56) 시장은 19일 실시된 시장 선거에서 4년 임기의 재선에 성공하자 “앞으로도 시민의 뜻을 존중하는 일꾼 시장이 되겠다”는 당선 사례를 발표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그를 후보로 영입하기 위해 앞다퉈 지지를 표명했던 정당들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시장으로 뽑아준 힘은 시민들로부터 나왔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서 잇따라 실시되고 있는 지방 보궐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들이 휩쓸고 있다. 19일 실시된 22개 시장선거의 경우 당선자들은 모두 무소속이라고 지지(時事)통신이 보도했다. 일본의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은 1980년대부터 불기 시작했지만, 이 같은 현상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만큼 지방선거에 관한 한 정당 제도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당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와 권력 투쟁으로 허송세월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면서, 유권자들 사이에 “정당정치가 지역사회 발전과 통합에는 오히려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갈수록 확산됐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 출마가 상식이자 기본이 됐다. 후보자들은 “자민당이나 민주당을 달고 나가면 역풍을 맞아 낙선할 가능성이 크다”고 털어놓고 있다. 일본 북부 아오모리(靑森)에서 재선에 도전한 무소속의 현직 시장은 실질적으로 집권 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의 지원을 받았다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시장 당선자들은 “특정 정당 후보로 출마하면 보수·진보 등의 색깔론에 휘말리기 쉽다”며 “무소속은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부동층의 표심을 사로잡는 데도 유리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당선되기 위해 ‘무소속의 탈’을 쓰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인기 연예인 출신으로 지난달 15일 지바(千葉)현 지사에 당선된 모리타 겐사쿠(森田健作)는 선거 운동 당시 ‘완전 무소속’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민당의 후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사면서 시민단체가 검찰에 당선무효 소송을 냈다. 지자체의 탈정당 현상은 정당들엔 고민거리다. 중의원·참의원으로 된 양당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대표하지만 지역사회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정치인은 지사·시장 등 지자체 단체장이다. 이들이 무소속이면 중앙정부의 정책을 지방에 펴기 어렵다.

일본의 정당들은 고육지책으로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우리 정당의 후원을 받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번에 84%의 지지율을 얻은 모리 도야마시장은 주요 정당의 경쟁적인 구애를 받아 자민당·민주당·공명당·사회민주당·국민신당 등 주요 정당의 지지 표명을 받았다. 그로선 특정 정당의 견제를 받아서도 안 되기 때문에 두루 지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정당정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정치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55년부터 지속된 자민당 체제에서 부정부패와 정책 오류가 잇따르고, 제1 야당인 민주당도 획기적인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유권자들 사이에는 ‘보무(保無·보수계 무소속)’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기존 체제를 뒤집어 놓는 극단적 개혁도 하지 않으면서 당리당략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제도나 일자리 확보 등 지역 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보수 성향의 무소속 단체장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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