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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자 ‘석면 함유 탈크’ 관련 의약품 판금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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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즉시 회수할 정도로 위해성 있었나
“위험 작다”전문가 의견 존중 … 당당한 국민 설득 아쉬워

석면 함유 탈크 관련 의약품이 국민의 불안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식약청은 베이비파우더에 대한 석면 검사를 시작으로 탈크의 규격 기준을 새로 마련하고 관련 의약품 1122개 품목에 대해 판매금지 및 회수 명령을 단행했다. 국민의 안전과 불안을 최우선에 둔 신속한 예방조치였다. 그 이후 의약품 수급의 대혼란, 국민의 불편과 불만을 해소하고자 식약청은 물론 제약협회·약사회·의사협회 등 관련 단체가 각종 보완·지원책을 제시하고 상호 협력을 하고 있다. 제약용 탈크는 미세한 광물성 가루로 정제나 캡슐제의 제조 과정에서 대략 1~2% 정도 쓰인다. 문제의 발단은 수입 원료인 탈크에 불순물로 혼입된 석면이다. 탈크에서 석면이 나오는 것은 탈크의 정제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며 그 순도는 산지, 정제 과정, 석면의 규제 정도에 따라 다르다.

그러면 관련 의약품이 즉시 회수돼야 할 정도로 사람의 건강에 위해를 끼칠 것인가. 실제 이들 의약품에서도 석면이 검출될 것인가. 석면은 흡입하면 발암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입으로 먹을 때는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기 때문에 위험성은 현저히 낮다. 이는 건강한 한국인의 폐 조직 건조 중량 1g 중에도 약 20만~30만 개의 석면 입자가 존재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먹는 물에 석면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고, 미국의 환경 기준도 먹는 물 1L당 석면 입자를 700만 개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또 먹는 의약품은 위해성 여부에 관한 보고가 없으며 대개 사용량이 적어 석면이 위장에 노출되는 양이 적고 기간도 짧아 일반적으로 위해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대체 의약품 조달과 필수 의약품의 투약 지연에 따른 환자의 안전과 불편, 병·의원과 약국의 혼란 및 제약업계의 막대한 손실을 고려하면 식약청이 좀 더 의연하게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석면 함유 탈크의 안전성과 위해성을 바탕으로 전문가 의견을 존중해 국민에게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당당함이 있었으면 했다. 식약청은 의약품의 안전과 품질을 관장하는 국가 최고기관으로서 그 전문성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한다.

일본에서도 1986년 베이비파우더에서 석면 검출을 보고받고 그 이듬해 3월 품질 확보 검토회를 거쳐 11월 탈크에 대해 석면 혼입이 인정되지 않는 원료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오늘날까지 지도·감시·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즉각적인 제품 회수 명령은 없었다.

이미 식약청의 조치 이행 명령은 떨어졌다. 이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석면이 검출된 탈크는 당연히 의약품에 사용할 수 없다. 제약회사는 고품질 의약품이 제조되도록 품질보증에 역량을 모아야 하며, 정부는 그동안 약물 유해반응 감시에 주력한 것만큼 이제 출발점부터 국제 수준에 맞춰 유해물질의 규격 감시를 상시체제로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약품 제조 기술과 품질보증 수준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와 있으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요구 또한 높다. 향후 범부처 간의 유기적인 협조와 철저한 감시체계가 빨리 구축돼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청정국가가 되길 고대한다.

사전예방원칙 … 판매금지는 잘한 일
일부 제품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은 양해할 수 있는 문제

워낭소리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내용은 70대 할아버지가 40년간 소와 살아가는 이야기다. 위험 소통이란 말이 있다. 현대인의 삶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해 요소들에 대해 일반 시민, 소비자들과 정확하고 진솔하게 문제점을 공유하고 이를 같이 해결해 나가자는 취지의 개념이다. 석면 문제를 잘 아는 한 위험 소통 전문가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소가 나누는 소통이야말로 쌍방향 소통의 진수라고 말한다. 소와도 통할 수 있어야 소통이라는 의미다.

일반인이 석면에 대한 아는 건 ‘발암물질’이라는 것과 흔히 보는 슬레이트에 석면이 들었다는 사실 정도다. 그런데 발암물질 중에서도 ‘1급’인 석면이 아기들이 쓰는 물건에 들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언론은 식약청의 무책임에 뭇매를 가했다. 환경단체들은 식약청과 노동청, 그리고 제조사와 원료공급사를 경찰에 고발했다. 성난 아기 엄마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공포는 화장품과 의약품·생활용품으로까지 확대됐다. 한국사회가 ‘석면 쇼크’에 빠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실제 석면의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석면이 든 탈크를 사용한 제품으로 암에 걸린 보고 사례는 없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과 활석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암 발생 보고가 있고 암을 일으키는 최소량에 대한 연구가 없으므로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선다. 일부 전문가는 식약청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단순히 대중의 걱정을 불식시키기 위해 성급히 회수 명령을 내렸다고 비판한다. 과연 그럴까.

위험을 다룰 때는 ‘사전예방원칙’이라는 게 있다. 다수 시민의 건강에 위해를 줄 수 있는 문제라면 과학적 연구가 충분하지 않고 찬반 양론이 존재하는 경우라도 미리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믿고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나중에 암과 같은 건강 피해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고,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의 경우 사전예방원칙을 미리 적용해 문제의 석면제품 제조를 막지 못한 잘못은 있다. 하지만 식약청이 늦게나마 포기하지 않고 이 원칙을 적용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식약청의 조치는 제조사와 제약사의 반발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소비자, 즉 시민의 건강과 위험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조치였다. 만일 식약청이 정확한 조사를 핑계로 시간을 끌면서 조사 결과나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면 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여론은 더욱 악화됐을 것이다. 수십만 명의 아기와 시민이 매일 사용하는 제품과 약품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1000가지가 넘는 제품 중 일부 품목에 대한 부정확한 판단은 양해될 수 있는 문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 필요한 것이 사전예방 원칙이요, 위험소통 개념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 개념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이럴 때 판단의 중심은 다수 소비자와 시민이 돼야 하고 특히 사회적·신체적 약자를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수많은 소비자를 대신해 식약청을 고발한 당사자다. 하지만 석면 탈크를 쓴 제품에 대한 조사 결과를 모두 공개하고 전격적인 회수 결정을 내린 식약청의 판단이 잘못이라고 비판한다면 사전예방원칙과 위험 소통의 관점에서 반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