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 사실상 마비 상태…초우량기업 발행물량마저 안 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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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회사채 금리가 연 30%를 웃돌자 초우량기업마저 회사채발행물량이 제대로 소화가 안되는 등 채권시장의 직접금융이 마비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오는 연말까지 기업들이 상환해야할 회사채 규모가 2조원을 넘어 연말 자금대란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23일 발행된 회사채 물량은 5대그룹 계열사 발행분을 포함해 4천6백95억원에 달했지만 실제로 매각된 것은 4분의 1도 안되는1천1백30억원에 불과했다.

이날 발행물량을 소화한 대기업은 ㈜대우뿐으로 연 31.5%의 초고금리에 1천억원어치만 팔았고 삼성전자 (1천억원).SK (6백억원).현대석유화학 (7백억원) 등 5대그룹 우량 계열사들조차도 주인을 찾지 못해 발행물량을 주간사와 함께 전량 떠안아 갔다.

대우증권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대체로 25%까지는 부담할 용의를 보이고 있으나 그 이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어서 회사채 발행계획 자체가 아예 취소되는 사태가 잇따를 것 같다" 고 말했다.

한편 오는 연말까지 회사채만기도래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기업들은 한바탕 자금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일반 사채 1조4천억원과 31일 하루동안에 만기도래하는 1조2천여억원의 전환사채 (CB) 를 합치면 기업들이 오는 연말까지 갚아야 하는 회사채는 모두 2조5천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올 들어 월평균 회사채 발행규모인 2조4천1백44억원을 웃도는 규모다.

이에 따라 대기업 계열사를 제외하고는 연말에서 연초 사이 돈줄이 막혀 도산하는 기업이 무더기로 쏟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미 지난 주말부터 하루에 1~4개사가 부도를 내는 등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업 부도가 꼬리를 무는 실정이다. 동양증권 김병철채권팀장은 "회사채 발행물량은 이달중 통틀어 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돼 사상 최대치" 라며 "기업들이 연말과 연초를 넘기는 것이 고비" 라고 말했다.

회사채 월간 발행한도 (1천억원)가 지난 16일부터 폐지되면서 5대그룹 계열사가 회사채를 추가로 발행하는 것도 채권시장을 경색시키는 요인이다.

5대그룹은 이달중에만 4조1천억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LG그룹이 1조5천2백억원으로 가장 많고 삼성그룹 (9천2백억원).현대그룹 (7천5백억원).대우 (6천3백억원).선경 (2천8백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홍승일.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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