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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2천원 치솟는 환율…신용 추락에 외국자본 썰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환율 상승세가 너무 가파르다.

16일 환율변동폭을 없앨 때만 해도 외환당국은 이것이 환율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장기적으로는 달러당 1천2백원선이 적정환율이라는 느긋한 기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달러당 2천원선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번 환율폭등에 직접 불을 댕긴 것은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의 신용등급 하향조정이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지자 당연히 국가부도설이 제기되고 이에 따라 환율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찔끔찔끔 달러를 대주던 외국금융기관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금융기관들이 추진해온 자산담보부채권 (ABS) 발행을 통한 외화조달도 연내에는 물건너 간듯 하다.

또 만기가 닥치지도 않은 대출에 대해서도 중도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만기연장비율이 종전 30~40%에서 10%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뜩이나 외화가 모자라는 판에 외국금융기관들은 '마른 수건에서 물 짜내듯' 달러를 거둬가고 있는 것이다.

국내은행들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서 외채를 갚고 있는 실정이다.

또 국채발행도 갈수록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크' 수준으로 떨어진 정부의 신용도로는 '정부보증' 이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막다른 상황에 이르자 딜러들이나 연구기관들도 앞으로의 환율전망에 대해 뾰족한 답변을 못하고 있다.

환율의 움직임이 경상수지나 경제여건 등 이론적인 변수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달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했으나 환율안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단 23일에는 가까스로 달러당 2천원선은 지켰으나 언제 이것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어 여간해서는 시장이 안정될 분위기가 아니다.

한 민간연구기관이 지난달말 '잘못하면 환율이 연내 달러당 2천원까지 갈 수 있다' 고 예측했으나 이것도 너무 안이한 전망이 되고 말았다.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외국인의 신뢰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금융계에서는 누구나 이런 의견이다.

방법은 지금까지 여러차례 지적돼온대로다.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과감하고 신속한 정리가 가장 급하다.

태국.인도네시아도 그렇게 했다.

금융기관 폐쇄의 사회적 충격이 크다는 것은 더이상 조치를 늦출 명분이 안된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이것저것 다 따지면서 부실덩어리를 떠안고 가려는 자세를 고집하면 곧 파국이 올지도 모른다" 고 말했다.

심지어 금융기관들의 리스케줄링 (채무상환조정) 사태가 불가피할지도 모른다는 예견까지 나온다.

환율이 이처럼 고공비행을 계속해 경제전체를 무너뜨리게 놓아두는 것보다 차라리 준 (準) 모라토리엄에 해당하는 리스케줄링을 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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