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환영 칼럼

이승만 콤플렉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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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콤플렉스는 ‘강력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관념ㆍ기억의 집합’이다. 콤플렉스는 종류도 가지가지다. ‘열등 콤플렉스’ ‘우월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레드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등.

‘메시아 콤플렉스’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이 메시아가 돼야 한다고 믿는 콤플렉스다. 메시아 콤플렉스는 개인뿐 아니라 집단 의식ㆍ무의식 차원에서도 작동한다.

메시아 콤플렉스의 발원지는 고대 이스라엘이다. 기원전 1000년~962년께까지 왕의 자리에 있었던 다윗 왕의 영화는 민족 분열과 외세의 침입으로 산산조각 났다. 외세의 압제에 신음하거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진 유대인들은 제2의 다윗이 나오기를 고대했다. 마르크스ㆍ프로이트ㆍ아인슈타인 등 각 분야의 거물 중에 유대인이 많은 것도 이 메시아 콤플렉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유대인 중에 노벨상 수상자가 많은 비결까지도 메시아 콤플렉스에 있는 게 아닐까.

우리에게도 메시아 콤플렉스와 닮은꼴인 콤플렉스가 있다. 바로 ‘정도령 콤플렉스’다. 정감록(鄭鑑錄)에는 정씨(鄭氏) 진인(眞人)이 출현해 왕조 교체와 사회 변혁을 이룬다는 예언이 나와 있다.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는 가난’, 일본과 청나라에 당한 굴욕과 신분상의 모순을 해소하고 통쾌한 새 역사를 써내려 갈 메시아가 정도령이었다. 정도령의 출현을 희구하는 마음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민중운동의 불길을 치솟게 하는 땔감이었다. 정도령 출현 사상은 동학 등 민족종교에서 개벽이라는 개념으로 종교철학화되기도 했다.

조선왕조가 망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이 들어섰다. 그러나 정도령 콤플렉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왕조’인 대한민국이 들어섰으나 정도령 콤플렉스는 아직까지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실정이다. 민중의 입장에선 대한민국이 들어서고도 고단한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래서 제기된 항간의 설은 전주 이씨인 이승만이 ‘조선의 28대 왕’이라는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또 다른 콤플렉스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6ㆍ25 남침을 극복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민주발전을 완성하지 못했다. 교육에 대한 강조로 박정희 시대 한강의 기적의 기반을 마련했으나 이승만 시대의 경제회복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그래서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國父)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대통령들은 자신이 ‘진정한 국부’가 될 수도 있다는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근대화의 아버지가 됐다. 그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국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권위주의를 청산하지 못했으며 민주화는 1980년대까지 미뤄졌다.

‘제2의 건국’ ‘신한국 창조’ 같은 정치 프로그램은 ‘국부 콤플렉스’의 외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한국의 국호가 대한민국으로 유지되고 정체(政體) 또한 자유민주주의가 채택된다면 이승만은 통일한국에서도 국부다.

한편 민간인 출신 대통령들에겐 ‘박정희 콤플렉스’까지 더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업적을 5년 임기 내에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정의할 수 있는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승화하면 놀라운 성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콤플렉스는 역기능도 많다. 국부 콤플렉스, 박정희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대통령들은 과거를 부정한다. 무(無)에서 출발하려는 경향이 있다. 임기는 5년에 불과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야 달성할 수 있는 청사진을 내놓는다. 행정수도, 한반도 대운하 등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기기 위해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정책을 밀어붙이려고 한다.

여기에는 이승만ㆍ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유산도 한몫한다. 이승만은 미국과 싸워가며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으며 지켜냈다. 박정희는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붙여 경제성장에 필요한 인프라를 건설했다. 그래서 ‘두고 보면 내가 옳다’는 사고가 형성됐다. 이러한 사고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의 전형이다.

지금은 정파적 입장에 따라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그러나 우리의 자손들은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ㆍ이명박을 공도 있고 과도 있는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로 기억하지 않을까.

기자=중앙선데이 지식팀장 김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