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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한 방’ 갖춘 해결사 키우기, 리그-대표팀 힘 모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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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16면

허정무(왼쪽) 감독이 지난 1일 북한과의 경기에서 교체선수인 김치우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김치우는 이날 결승골을 넣었다.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축구의 해묵은 화두인 ‘스트라이커 논쟁’을 다시 촉발시켰다. 허 감독은 13일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기술발전위원회에 참석한 뒤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대형 스트라이커 부재론’ 불댕긴 허정무의 속내는

허 감독은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북한전(1-0 승)에 출전한 최전방 공격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근호(24·주빌로 이와타)는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좋은 찬스를 많이 잡았다. 다만 결정력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주영(24·AS 모나코)에 대해서는 “아주 좋았을 때 몸을 점차 회복 중인 것 같다. 다만 킬러로서 슈팅 타이밍, 공간 창출 능력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허 감독은 “황선홍(41·부산 아이파크 감독), 김도훈(39·성남 일화 코치) 이후 대형 스트라이커가 없다. 조재진(28·감바 오사카)이나 이동국(30·전북 현대) 같은 선수들에게 기대했지만 성장을 못 하고 주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 감독이 말하는 ‘대형 스트라이커’는 어떤 선수일까. 그는 어떤 맥락에서 이 같은 언급을 한 것일까. 끊어진 대형 스트라이커의 맥을 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형 스트라이커=타깃맨?
스트라이커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중앙대 김종환(사회체육학부) 교수가 펴낸 『축구용어사전』(2003년·세종출판사)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포워드:스트라이커(forward; striker)
상대팀 최전방 골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선수가 포워드인데, 항상 득점 기회를 노리는 역할로 스트라이커라고도 한다. 상대방 수비 선수에게 끈질긴 마크를 받으므로 이를 따돌리고 슈팅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강한 체력과 유연성·과감성 등이 요구된다. 키가 크면 일반적으로 유리하지만 대시해 들어가는 힘이나 드리블 돌파력 등 뛰어난 기량과 테크닉을 갖고 있다면 키가 작더라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후략).

스트라이커는 최전방 공격수를 지칭하는 ‘포워드’와 같이 쓰이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스트라이커는 역할과 기능에 따라 ‘타깃맨(target man)형’ ‘섀도(shadow)형’ ‘윙어(winger)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타깃맨은 상대 진영에 깊숙이 포진하면서 주로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하거나 동료에게 내주는 역할을 한다. 타깃맨은 헤딩을 따내고 상대 수비와 몸싸움을 하며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선수가 맡는 게 일반적이다. 허 감독이 언급했던 조재진·이동국이 전형적인 타깃맨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허 감독이 말했던 대형 스트라이커는 타깃맨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허 감독의 인터뷰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도 ‘대형 스트라이커=타깃맨’으로 이해한 것 같다.
 
대형 스트라이커=빅맨?
타깃맨은 네덜란드 아약스에서 즐겨 쓰던 4-3-3 포메이션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공격수 3명 중 좌우에 윙포워드가 있고 가운데 한 명의 공격수를 타깃맨으로 설정한다.

발 빠른 윙포워드가 측면을 돌파해 크로스를 올리면 중앙의 타깃맨이 해결하거나 패스를 내주는 전형적인 네덜란드 스타일이다.

한국 대표팀도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한 2001년 이후 최전방 중앙에 타깃맨을 세우는 시스템을 쓰기 시작했다. 2002 월드컵 이후 잠깐 대표팀을 맡았던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이후 요하네스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으로 ‘네덜란드 커넥션’이 이어졌고, 타깃맨을 앞세우는 스타일도 바뀌지 않았다. 조재진·이동국·정조국(FC 서울) 등이 그 역할을 맡았다.

2007년 말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허 감독도 초기에는 이 시스템을 따랐다.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뛰었던 허 감독은 조재진·조진수(울산)·박주영 등을 잇따라 타깃맨으로 활용하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현대 축구에서 공수의 폭이 좁혀지면서 측면 공간을 활용한 윙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게 되었고, 이 바람에 타깃맨이 중앙에서 고립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결국 공격이 단조로워지고 득점력도 점점 떨어졌다.

허 감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부터 투 스트라이커 체제로 공격진을 개편했다. 이날 한국은 이근호가 2골을 넣으며 3-0으로 승리했다. 허정무호는 이 경기를 포함해 투 스트라이커를 포진시킨 최근 9경기에서 무패(5승4무)의 기록을 이어오고 있다. 9경기에서 17골을 얻어 ‘골 결정력 부재’에 대한 우려도 어느 정도 해소됐다.

투 스트라이커의 경우 보통 한 명은 키와 체격이 좋은 선수, 다른 한 명은 크지 않지만 빠르고 감각이 좋은 선수가 나선다. 이를 ‘빅 앤드 스몰 조합’이라고 한다. 허 감독은 부산의 정성훈(30·1m87㎝)을 빅맨 후보로 낙점하고 7경기 연속 출전시켰다.

그러나 정성훈은 한 골도 넣지 못했다. 반면 스몰맨 이근호(1m77㎝)는 9경기에서 7골이나 터뜨려 ‘신해결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허 감독이 말하는 대형 스트라이커 부재는 빅맨 역할을 할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걱정일 수도 있다.
 
대형 스트라이커=믿을맨?
따라서 허 감독이 말하는 대형 스트라이커는 이근호(스몰맨)의 짝이 돼 줄 빅맨, 또는 원 스트라이커를 쓸 경우 타깃맨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를 총칭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두 경기(이라크·북한전)에서는 이근호의 짝으로 박주영을 붙였다. 박주영은 나름대로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 줬지만 골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또한 박주영(1m82㎝)은 스타일상 빅맨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다른 한편으로 대형 스트라이커를 체격이나 플레이 스타일 같은 ‘하드웨어’ 차원에서만 볼 게 아니라 카리스마·골 결정력·영향력 등의 ‘소프트웨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허 감독이 언급한 황선홍·김도훈은 당대 대표팀에서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동료의 신뢰를 받는 선수였다. 그들은 팀이 꼭 필요할 때 한 방을 터뜨려 줬다. 대형 스트라이커는 강한 정신력과 집중력으로 무장해 큰 게임에 강하고 팀이 어려울 때 해 줄 수 있는 ‘포스’를 갖춰야 한다.

스트라이커는 플레이 유형에 따라 ‘감각형’과 ‘돌파형’으로 나뉜다. 감각형은 타고난 센스와 위치 선정을 바탕으로 어떤 자세에서든 정확한 슈팅을 날릴 수 있는 선수고, 돌파형은 폭넓은 움직임과 드리블·패스 능력으로 자신이 골 찬스를 만들고 해결하는 유형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우 돌파형은 웨인 루니, 감각형은 베르바토프다. 최전방 공격수와 최후방 수비수의 간격이 30m 이내로 좁혀진 현대 축구에서는 감각형과 돌파형이 조화된 선수가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될 수 있다.
 
소속팀에서 ‘맞춤형’ 훈련으로 키워내야
그렇다면 대형 스트라이커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허 감독은 “K-리그에 외국인 공격수들이 득세하면서 우리 선수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국내 선수들에게 좀 더 기회를 줘야 한다. 대표팀에 불러들여 훈련을 해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표팀 소집 일수가 엄격히 제한된 상황에서 이는 쉽지 않다.

소속 팀에서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스트라이커가 골키퍼 같은 특수 포지션이라는 인식을 갖고 ‘맞춤형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한다.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체력-기본기-전술 훈련을 소화한 뒤 슈팅 몇 차례 때려 보는 것으로는 골 결정력을 높이기 어렵다. 골이 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정확한 슈팅을 할 수 있도록 반복 훈련해야 한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측면 크로스 등 횡(橫)패스를 슈팅으로 연결하는 동작이 많았지만 요즘은 미드필드에서 찔러 주는 스루패스를 받아 슈팅하는 종(從)적인 움직임이 늘어났다. 따라서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골키퍼를 속이는 동작 또는 반 박자 빨리 빈틈을 찾아 슈팅하는 훈련을 더 해야 한다.

구태의연한 훈련 방식도 문제다. 과거 대표팀의 슈팅 훈련도 수비수가 붙지 않은 상태에서 크로스를 논스톱 처리하거나 아크 부근에서 코치가 내준 볼을 중거리 슈팅으로 연결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이런 상황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득점의 대부분이 페널티지역 안에서, 수비수가 밀집된 상태에서 이뤄진다. 수비수의 마크를 피하고 슈팅하기 좋은 방향으로 공을 잡아 놓은 ‘퍼스트 터치’, 슈팅하는 척 상대를 속여 더 좋은 슈팅 기회를 만들어내는 방법 등을 더 세밀하게 훈련해야 한다.

실전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대형 스트라이커 후보들이 K-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밀려나지 않고 경기를 통해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구단의 세심한 배려와 프로축구연맹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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