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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어젠다로 삼아 컨트롤 타워 세워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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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호 22면

민동필(62·사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요즘 미래인터넷(FI)에 푹 빠져 있다. 40년 전 등장한 인터넷처럼 FI가 한 번 더 세상을 뒤바꾸리란 확신을 갖고 있어서다. 매달 한 번 열리는 미래인터넷포럼 세미나를 꼬박꼬박 챙기고 관련 정책 토론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기초연이 미래 인터넷 개발을 위한 테스트베드 운영을 위해 올해 처음 20억원의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던 데에도 그의 역할이 컸다. “미래 인터넷 분야에서 미국보다 몇 년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민동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지금의 인터넷도 속도와 서비스가 날로 향상되고 있다. 그런데도 FI가 필요한가.
“현재의 인터넷을 자동차에 비유하면 FI는 비행기라고 할 수 있다. 2차원에서 3차원으로, 개별에서 통합으로, 고정된 것에서 모바일로 차원이 바뀌는 게 FI다. 현실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감을 잡기 어렵지만 일단 등장하면 세상을 뒤바꾸게 된다. 유연성이 부족하고 보안성에도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기존 인터넷을 완전히 대체하려는 것이다.”

-한두 가지 기술이 아닌 시스템 자체가 바뀐다는 얘긴가.
“그렇다. 편지나 전령을 무선전신이 대체하고, 다시 전화·팩시밀리가 나왔다. 요즘은 인터넷과 e-메일로 소식을 전하고 이를 이용해 일을 한다. 이는 전기라는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했기에 가능한 진화 과정이었다. FI는 단순히 속도와 편리성을 높이는 진화가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혁명적인 과정이다. 이 때문에 여러 기술을 어떤 표준과 시스템으로 통합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국가 간의 경쟁이 치열한 것이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지만 표준과 기초 기술에선 취약한데.
“인터넷 비즈니스 아이디어는 한국이 내놓고 재미는 다른 나라에서 본 게 적지 않다. 검색 서비스나 인터넷 경매(옥션) 등이 그렇다. 그 이유는 표준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어의 문제도 있지만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발달한 가상 사회를 갖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출발도 늦고 연구 인력과 재정 지원도 부족하지 않나.
“전체는 아니어도 모바일 등 일부 영역에선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다.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도 축적돼 있다. 무엇보다 우수한 인력과 앞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는 FI 개발을 위한 글로벌 테스트베드로 충분하다. FI를 국가 어젠다로 설정하고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정책 측면에서 보면 FI 분야는 무주공산이다. 아직 FI 개발을 주도하는 부처가 없다 보니 정부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 안에 이 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은 방송통신위원회 서기관 한 명뿐이다. 이 점은 민 이사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이명박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일할 당시 FI에 관한 국가 어젠다를 만들었지만 촉박한 일정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

-FI가 녹색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전 세계에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수십 억 개 있지만 독립해 따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전기 소비량이 어마어마하다. 인터넷으로 연결해 제어하면 에너지 소비량을 20%가량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그만큼 줄이는 것이니 그야말로 ‘그린’ 아닌가.”

-FI 연구를 앞당기기 위한 정책 우선순위는.
“먼저 컨트롤 타워를 세우고 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런 뒤 해외 연구 동향과 국내 사정을 감안해 집중할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을 많이 하되 단기적인 결과에 급급해선 안 된다. 기초과학이 많이 연관돼 있는 만큼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게 중요하다.”

민 이사장은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11대학에서 박사 학위(핵물리학)를 받은 뒤 1984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했다.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대통령직 인수위 과학비즈니스벨트 TF 위원 등을 지냈으며, 지난해 8월 5대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이 됐다. 기초연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13개 기초·공공기술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지원·육성하기 위해 99년 3월 설립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특별 법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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