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 15개 초등학교엔 낙제생이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월 16일 교사들의 열정 덕분에 인구 3만1000명의 농촌 지역 학생들이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자가 가장 적다고 발표했다. 다음 날 일간지들은 이 사실을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2월 18일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임실의 기적’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두 달이 지난 시점에서 사건의 전모와 임실의 분위기를 짚어 봤다.
사건은 의사 소통의 부족과 안이한 업무 처리가 그 원인이었다.
1월 7일 임실교육청 박진자 장학사는 일선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학습 부진 학생의 숫자를 물었다. 전화를 받은 학교의 일직 교사는 “학력 미달자가 없다”고 대답했다. 이를 근거로 박 장학사는 ‘학력 미달자 0명’ 보고서를 만들어 전북교육청에 보고했다.
일주일 뒤 추가 학력 미달자가 있다는 보고가 들어와 박 장학사는 도교육청에 전화 ·e-메일로 자료를 전달했다. 하지만 도교육청 성락인 장학사는 수정하지 않았다. 성 장학사는 “나중에 전자문서 양식으로 보낼 것으로 판단하고, e-메일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청에서 온 확인 전화에도 “보고서 그대로”라고 대답했다.
감사 결과 임실 지역 초등 6학년생 학력 미달자는 9명으로 확인됐다. 전북도교육청은 박·성 두 장학사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김찬기 전북부교육감은 “의도적인 조작이나 은폐 시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홍역을 치른 임실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주민 이재천(44·자영업)씨는 “민선 군수들이 잇따라 구속된 데 이어 성적 조작 파문이 발생해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마음의 상처를 받았으나 명예가 회복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감사 결과 임실의 학력 미달자 비율이 0.7%로 전국 평균(2.4%)에 비해 월등히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임실의 농촌 학교에는 도시에서 전학 온 학생들로 활기를 띠고 있다. 전교생이 35명인 신덕초등학교의 경우 새 학기 들어 6명이 전주에서 전학 왔다. 덕치초교는 전교생 39명 중 17명이 서울·인천 등에서 왔다.
덕치초등 5학년 이지형(12)양은 2년 전에는 인천에서 학교를 다녔다. 매일 학원 2~3곳을 순례했다. 지난해 3월 오빠(중학교 1년), 동생(유치원생)과 함께 이 학교로 전학을 온 뒤 학원 대신 섬진강으로 달려가 물고기·다슬기·가재를 잡고, 주변 들판으로 야생화 관찰을 나간다. 방과후 수업으로 바이올린·태권도·중국어도 배운다.
섬진강변 농촌 학교가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도시 학생들이 단기 유학을 다녀갈 수 있도록 ‘섬진강 참 좋은 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부터다.
임실=장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