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아이가 싫던 뉴요커, 아이에게 푹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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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너를 사랑하라고 아빠를 만들었다
엘리샤 쿠퍼 지음, 박영수 옮김
21세기북스, 224쪽, 1만원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다.” 이 책의 지은이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 20대에 아빠가 됐다. 철부지 10대도 아니고, 어쩌다 실수로 뜻하지 않게 아빠가 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아빠가 된 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그는 아기를 안고 있느니 차라리 폭탄을 들고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남자가 아이가 태어난 날부터 돌이 될 때까지 쓴 육아일기다. 직업은 아동작가(그는 자신의 직업도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여자(엘리즈)의 남편. 낮에는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시켜놓고 작품 구상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와인을 즐기던 그는 한마디로 잘나가던 뉴요커였다.

아이는 그의 삶에 파고 들어와 한가롭던 일상의 틀을 산산이 부수었다. 집안은 ‘지뢰밭’으로 변했다.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잘못해서 봉제 인형 같은 걸 밟으면 ‘음매’하는 폭음이 터져 나왔다. “당신 차례야.” 새벽에 아내로부터 아이를 건네 받고 선 채로 꾸벅꾸벅 졸던 그의 눈에는 창 밖의 “나무들도 졸려 보였다.”

어쩌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땐 우는 아이를 안고 밖에 나왔다가 아이를 덤불에다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

무서운 아빠라고? 이런 이야기로만 일관했다면 이 책은 많은 싱글족과 아이 없는 부부들에게 좋은 위로가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소심하지만 솔직하게 투정을 늘어놓는 솜씨는 일상의 소소한 기쁨(사실은 걱정까지!)을 섬세하게 들춰내 가슴이 찡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한다.

“조이를 품에 매단 채 두 팔을 오므리면 조이가 코를 고는 소리가 커지곤 했는데, 아코디언으로 축하곡을 연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조이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따뜻하게 품에 안겨 있던 느낌과 함께 조이의 무의식 속에 심어주고 싶은….”

이야기는 따뜻하고 유쾌하다. 아내와 아이에 대한 지은이의 애틋한 마음은 단순한 ‘가족 사랑’을 넘어선다. 그 투정과 걱정에, 감동에 소소한 일상에 보내는 경이로운 시선이 읽힌다. 원제 『Crawling』.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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