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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일본 속의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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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나를 데려간 분들은 워낙 일본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 보통 30분이면 둘러볼 수 있는 장소를 한 시간 이상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다녔다. 이 지역은 일본 고대국가의 역사가 살아 있는 땅이라 호류지(法隆寺), 도다이지(東大寺) , 고류지(廣隆寺) 등을 돌아보며 고대 한·일 교류의 역사를 도처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모두 놀랐던 것은 일본의 낡은 사찰이나 성의 규모가 대부분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었다. 규모가 작은 건물들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건립한 것들이었다. 옛날에는 알지 못했으나 다시 한번 일본의 옛 건축물들을 둘러보면서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점이 많았다.

신라시대 불국사가 건립되었을 때 신라의 화엄종을 일본의 국교로 삼은 당시의 일본 천왕가는 일본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동대사를 건립했다. 그래서 불국사와 도다이지는 형제 사찰이다. 그러므로 석굴암의 대불과 도다이지의 대불도 형제인 셈이다. 내가 그렇게 설명하자 도다이지 대불의 엄청난 크기에 감탄한 동행자 한 분이 “일본 대불이 형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만큼 도다이지 대불은 16m라는 높이와 중량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 지역의 사찰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규모가 큰 것이 많다. 일본의 불교 성인으로 불리는 신란 스님이 시작한 정토진종의 중심 사찰 서본원사를 둘러봤을 때도 절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절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서본원사. 그렇게 큰 절을 지은 이유는 다름 아닌 오다 노부나가와 싸우려는 승병들의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적 건축물들의 놀라운 크기는 오사카성에서 절정에 달했다. 현재의 오사카성은 도쿠가와 시대에 원래 크기의 3분의 1로 축소된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경이적인 규모인데, 원래 이 성은 얼마나 더 웅장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성벽에는 거대한 바위가 많아 성을 쌓아 올릴 때 엄청난 인력이 동원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의 고대 건축물들은 결국 힘의 상징이었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절이나 성을 거대하게 쌓아 올린 것이다. 역사란 늘 반복되는 것이고, 결국 전쟁과 대립의 역사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여행 마지막에 오사카에 있는 동양도자기미술관에 들렀다. 관광객들이 별로 찾지 않는 곳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곳을 방문해 느끼는 바가 컸다. 거기에는 한반도에서 갖가지 경로로 일본에 건너간 청자·백자를 비롯해 많은 조선 도자기가 전시돼 있었다. 재일 한국인이 수집해 박물관에 기증한 것도 많았다. 동행한 분들이 “한국에 있으면 모두 국보급 보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2박3일 동안 일본 속의 한국을 우리는 여러 형태로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건축물들의 규모에 압도당하면서 그것이 ‘칼의 역사’였기 때문임을 깨달았고, 마지막 여정에 들른 도자기박물관에서는 작지만 민족의 혼이 담겨 있는 우리의 보물을 만나 무척 자랑스러우면서도 지나간 슬픈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의 도자기에게 일본은 영원한 외지라는 것이 새삼 느껴져 안타까움이 앞섰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일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