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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라운지] 주한 중동국 대사가 본 김선일씨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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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김선일씨가 피살된 이후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아랍국가의 외교관들은 바늘 방석에 앉은 기분일 것이다. 이번 테러가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관련이 있는 듯 비치기 때문이다. 중동국가 대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 이슬람을 오해 말라

압둘라 무하마드 알슈라파 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대사는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이며, 따라서 이번 김선일씨 피살은 더더욱 지하드의 정신에는 위배되는 것"이라며 "이슬람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흐메드 부타셰 알제리 대사도 "이번 사건의 1차적 책임은 테러리스트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부타셰 대사는 "알제리도 그간 숱한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에 시달려왔다"면서 "테러는 이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랍권을 포함한 전 세계의 문제이며, 그 누구도 테러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역만리에서 이라크 재건을 위해 애쓰는 한국 민간인을 해치는 행위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이번 사태가 한국인들의 반이슬람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지적에 대해 살리흐 M 알라지 주한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는 "터키의 이슬람 병사들이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을 비롯해 한국과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매우 돈독한 사이며, 이번 일이 한국과 아랍 관계에 그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많은 이슬람 신도들이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아무런 문제 없이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있다"면서 김씨를 살해한 무장세력과 이슬람과의 관계를 강하게 부정했다.

# 우리도 피해자다

사이드 페르베즈 후센 주한 파키스탄 대사는 지난주 말 이라크에서 발생한 파키스탄인 피랍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후센 대사는 "지난주 말 이라크 주둔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파키스탄인 한명이 무장단체에 피랍돼 현재 생사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후센 대사는 "파키스탄 정부는 피랍된 사람을 석방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지난주 김선일씨 구출에 매달렸던 한국 정부의 안타까운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지 마노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살인이 민간인에게, 특히 한국인에게 자행됐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단체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살해하고 피해를 줌으로써 우리의 일상생활을 마비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테러리즘은 오늘날 세계적인 현상이며, 이스라엘에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고한 사람들이 연일 무차별 테러에 희생되고 있다"면서 "지구상의 암과도 같은 존재인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이제 전 세계가 협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정부 선택 여지 없어

대사들은 "김씨 석방 과정에서 한국정부가 너무 무력하지 않았느냐"는 일부 여론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반응이었다. 알슈라파 UAE 대사는 "만일 한국정부가 납치범들의 요구를 수용해 철군 발표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극단적인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낼 수 없다"고 밝혔다.

압둘 라자크 알압둘가니 주한 카타르 대사는 "한국정부가 이라크 철군과 추가파병 철회라는 무장단체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약속대로 김씨를 석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한국 정부가 그 같은 방법을 택할 수는 절대 없었다는 게 알압둘가니 대사의 지적이다.

그는 "당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부가 취할 수 있는 방안은 극히 제한돼 있었던 게 사실이며, 한 나라의 외교관으로서 이런 한국정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고 말했다.

알압둘가니 카타르 대사는 촛불시위에 대해 "한국인들은 문명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애도를 표했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한국민들의 높은 민족의식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최원기.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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