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웰빙] 더위가 간 데 없네, 과연 '평양랭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9면

6월 2일, 평양은 29도였다. 이날은 5월 29일부터 7박8일간 이뤄진 고구려유적답사 일정 가운데 하이라이트인 진파리 1호 무덤의 벽화를 보는 날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1500여년 전의 조상들을 뵌다는 기쁨도 잠시, 온 몸을 휘감는 열기로 등줄기가 후줄근하게 땀범벅이 되다보니 어느덧 후손의 도리도 가물가물, 만사가 나른해지고 있었다.

순간 퍼뜩 정신을 깨우는 소리, "옥류관 갑세다." 아니 옥류관이라면 평양냉면? 가자-. 한 시간쯤 달려 옥류관에 도착했다. 귀빈 대접을 받아 베란다에 자리잡고 보니 앞으로 대동강이 흐르고 건너편엔 능라도 버들이 한창 푸르렀다. 이윽고 옥색 치마저고리 차림의 '접대원 동무'손에 실려 그 유명한 '평양랭면'이 나왔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 이미 에피타이저로 나온 타조고기수육과 녹두전에 물김치를 곁들여 평양소주를 거푸 석 잔이나 들이켠 터. 허겁지겁 젓가락을 들고싶었지만 목젖을 눅이며 한동안 기다렸다. 이곳 냉면 먹는 법이 특이하다는 소식을 듣고 왔기 때문이다. 뭐, 고명을 밀어놓고 사리를 꿰어든 채 식초로 목욕을 시킨 뒤 다시 육수에 담가 휘휘 저어 먹는다던가. 하지만 동행한 북측인사들이 워낙 냉면에 고수들이라 그런지 미녀 접대원은 "가위질을 하면 맛이 덜합네다"뿐 딱히 다른 교시가 없었다. 1인분에 200g씩 놋그릇에 담긴 모양새가 정갈한 것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게 손이 끌렸다.

원래 평양냉면은 심심하고 담백하다더니 진짜다. 면발도 순 메밀이라 메질어서 끊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나마 쟁반으로 나온 건 전분이 20%가량 섞여 쫄깃함이 낫다. 맵고 짠 것에 길들여진 때문인지 기대했던 만큼의 맛은 아니지만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숨통을 죄던 더위가 온데간데 없고, 하루 1만 그릇씩 팔리는 까닭이 절로 헤아려졌다. 과연 평양냉면이로고-.

평양=이만훈 사회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