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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웰빙] 밥만 먹고 못산다 … 후루루룩! 대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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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1시쯤 함흥냉면 골목으로 불리는 서울 오장동 거리. '흥남집' '함흥냉면집''신창면옥' 등 냉면집 세곳 모두 북새통이다. 집집마다 현관에는 냉면을 먹고 나오는 사람과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뒤엉켜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다.

간신히 안으로 헤집고 들어가 보니 종업원들이 냉면 쟁반을 들고 이리저리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저렇게 바삐 움직이다가 혹시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래도 냉면을 받아들고 열심히 "쭈욱 쭈욱" 면발을 빨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만족스러운 듯하다.

"우리 식구들은 워낙 국수를 좋아해 일주일에 한두번은 냉면이나 칼국수로 식사를 합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가족 나들이 삼아 별식으로 즐기기도 하지요." 오랜만에 짬을 내 부모님을 모시고 냉면 외식에 나섰다는 김경식씨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음식이다. 요즘처럼 날이 더울 땐 쌀밥 대신 시원한 오이냉국에 말아 더위를 식히기도 하고, 매운 양념으로 비벼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즐기기도 한다. 한겨울에도 마찬가지다. 뜨거운 국물에 칼국수를 삶아 속을 데우기도 하고, 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말아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이렇게 친숙한 음식은 아니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국수는 상당히 귀족적인 음식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쌀농사를 주로 하기 때문에 일반 백성이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접하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안동을 비롯한 영남지역에서는 귀한 손님이 오면 고기 국물에 말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의 설명이다.

생일상이나 잔칫상에 국수를 올린 풍습에서도 귀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기쁘고 좋은 날 별식으로 국수를 함께 나눠 먹으며 긴 국수 올처럼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이렇듯 귀한 음식이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찬 겨울밤 이불을 뒤집어쓰고 먹던 별미 간식이 아니라 주린 배를 채우는 구황음식이 된 것이다. 특히 휴전 뒤에는 미국의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가 넘쳐나면서 하루 세끼를 꼬박 국수로 연명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 차근차근 경제적인 안정을 되찾으면서 최근에는 국수의 위상이 다시 특별식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특히 메밀국수의 경우엔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바람에 힘입어 그 영양이 재조명되어 건강식으로까지 대접받고 있다.

강원대 바이오산업공학부 함승시 교수는 "메밀은 다른 곡류보다 단백질.아미노산.비타민이 풍부하고, 성인병인 고혈압과 변비 예방 효과가 뛰어나다"며 "최근 강원도 오지를 다니며 품질 좋은 메밀을 구하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수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구멍이 있는 국수틀에 반죽을 넣고 눌러 가늘게 뽑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그리고 막국수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칼국수처럼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 칼로 가늘게 써는 방법이다.

반죽에 쓰는 재료에 따라 메밀국수와 녹말국수, 그리고 밀가루국수로 나눌 수 있다. 메밀로 만든 국수는 평양냉면과 강원도 지방에서 많이 먹는 막국수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가루를 7대3의 비율로 섞어서 쓴다. 녹말가루가 들어가면 면이 쫄깃해지기 때문이다. 막국수는 원래 껍질을 벗기지 않은 거친 메밀가루에 밀가루나 녹말가루를 혼합해 면을 뽑았다. 최근에는 일본의 소바(메밀국수)처럼 껍질을 벗긴 메밀만으로 만든 면도 등장하고 있다.

평양냉면이나 막국수 모두 똑같은 메밀가루를 원료로 쓰지만 평양냉면에는 전분이, 막국수에는 밀가루가 더해지는 것으로 이해하면 쉽다. 흔히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다른 점을 물냉면과 회냉면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면을 만드는 반죽 재료에도 큰 차이가 있다. 메밀가루를 쓰는 평양냉면과 달리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뽑는다.

면.소스 전문생산업체인 면사랑 공병진 생산팀장은 "평양냉면.함흥냉면.막국수 모두 국수틀에서 뽑지만 반죽 재료에 따라 씹는 맛이 다르다"며 "함흥냉면이 가장 질기고, 다음이 평양냉면, 막국수는 가위질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면이 연하다"고 설명했다.

국수를 만드는 육수.꾸미도 면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가지에 의해 국수 맛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양반집에서 닭고기.쇠고기.꿩고기로 육수를 만들어 썼고 평민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멸치.다시마.동치미 국물 등을 사용했다. 꾸미는 냉면.온면.비빔면 등 조리방법에 따라 달리한다. 냉면에는 김치나 생채를 기본으로 해 편육.달걀지단을 얹고, 온면에는 볶은 나물이나 고기 혹은 달걀지단 등을 올린다. 비빔면에는 무친 나물, 생김치, 볶은 고기 등을 얹고, 특별히 회냉면의 경우엔 홍어.명태와 같이 잔가시가 없고 비린내가 적은 물고기를 회쳐서 놓는다.

냉면이나 막국수는 북쪽지방과 강원도에서 즐겨 먹은 반면 칼국수는 경상도.충청도 등 남쪽 지방의 별식이다. 주재료가 밀가루인데 경기도 일부 지역이나 이북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특히 경상도 안동지방에서는 콩가루를 섞어 국수를 뽑기로 유명하다. 칼국수는 육수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는데 전통적인 것이 사골칼국수.닭칼국수.멸치칼국수다. 최근엔 바지락칼국수와 버섯칼국수가 가세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여름철에 찬 얼음을 담근 콩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 콩국수를 비롯해 팥죽을 만들어 국물로 쓴 팥칼국수, 밀가루로 냉면을 흉내 내 만든 밀면, 고무줄처럼 쫄깃한 쫄면 등은 국수 중에 또 다른 별미로 꼽힌다.

춘천.횡성.안동=유지상 기자<yjsa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독자모델=신재은(6)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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