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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스타일]고단한 시대에 돌아본 '죽은자의 시'(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낡은 수첩에서 메모장이 떨어졌다.“해운대에서 울산으로 가는 길.좌천.동해 바다가 보이는 곳.양지녘에 수십구의 무덤이 모여 있다.비스듬히 기운 나무팻말 하나.간밤에 내린 비로 뻘이 자욱하다.삐죽 내민 단어-‘혼돈(混沌)’.가슴이 아리다.”그래 모두의 삶은 혼돈일 테지.다만 알량한 당의정 같을 뿐. 클래식 분위기를 가미한 헤비메탈 그룹 킹 크림슨의 69년 첫 앨범 ‘인 더 코트 오브 크림슨 킹’의 삽입곡 ‘에피타프(묘비명)’를 떠올린다.후렴가사 한토막.“지식이란 그 틀속에 자리하지 않은 자에겐 치명적일 뿐…혼돈이 나의 묘비명되리.”곧 파멸의 길을 치달을 것 같은 그들이 95년 14번째 앨범 ‘샤라크’를 낸 것을 보면 묘비명이 곧 끝은 아니라는 건가. 죽음은 차갑고 어둡다.깊고 외진 산속에 버려두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게다.묘지를 한복판에 두고 형성된 서구의 도시·마을을 떠올리면 영 딴판이다.루마니아 북서부 끝 서픈차 마을엔 ‘즐거운 묘지’까지 있다니까.온갖 그림과 조각이 새겨진 모습은 마치 ‘묘지 작품전’을 열고 있는 듯하단다. 이런 묘비명이 나온다.“어디 택시를 세울 곳 없어 우리 집 앞에까지 와서 대문을 받고 나를 쓰러뜨리다니.죽는 날까지 슬픔에 빠져 있을 내 가족이 애닯다.1978년 두살의 나이로 죽다.” “나는 노래와 춤을 좋아했다.그런데 결혼을 앞둔 어느날 죽음이 나의 삶을 거둬갔다.작별을 고한다.나를 잊지 마소서.” 하지만 우리에게서 죽음은 대개 한으로 얼룩져 눈물겹다.광주 망월동묘지.“지천에서 피는 꽃 흐드러질 때 해방으로 잉걸졌던 넋이여.” 서울 국립묘지.“여보!하늘이 무너져도 돌아오신다던 당신이 한줌의 흙이 되어 오시다니.” 그나마 기독교인의 묘비에서 자주 눈에 띄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장25절)”에서 애절함을 삭일 수 있을 정도다. 유난히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글귀도 있다.다시 국립묘지.“만날 때까지….” 자유기고가 윤창환씨가 찾은 몇개 묘비명.“경재가 우리 곁에 있어준 8년8개월을 고마워하면서.” “어머님 현경이가 요즘 많이 아픕니다.현우는 얼마전 반에서 1등을 했습니다.떡볶이만 5백원어치 사줬어요.…그리고 어머님 비석을 만들려고 저축을 하고 있는데 다음달이면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공장에 갔더니 5만원 정도만 더 있으면 된다고 하더군요.” 명문이면 더 오래 기억되리라. “전 노동자여 단결하라.이제껏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읽었지만 헛일.요지는 그 논점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카를 마르크스·독일 사상가)”“갈가마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드가 앨런 포·미국 시인 겸 소설가)” “살았다,썼다,사랑했다(스탕달·프랑스 소설가)”“강철같은 진실,칼날같은 정직함(코난 도일·영국 추리작가)”“소환바람(에밀리 디킨슨·미국 시인)”처럼….하지만 이승에 살았던 흔적 하나 남기는 게 더 의미있는 것.

어차피 탄내를 내며 사라지거나 흙으로 돌아갈 몸뚱어리. 잠깐이나마 존재했던 모습 그대로를 담으면 된다.

아니 무덤가에 떠돌게 할 묘비명 몇자를 기록해 줄 산자를 남기는 일이 중요할지 모른다.

영화 '아버지의 초상' (헨리 윙클러 감독 88년작)에선 평생을 엑스트라 배우로 살다간 아버지를 위해 의사인 아들이 이런 묘비명을 새기지 않았는가.

“나 이제 한심한 신세되었네. ” 미국 블루마운틴 링레스타운 묘지의 한 노예도망자의 묘비명을 옮기자. “비애와 고통으로 얼룩진 삶, 그리고 비극의 종말을 고한 한 인생. 북극성만 바라보며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마지막 순간 두고온 동료노예들을 배신했다는 생각이 치밀어…노예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운명의 잔을 들고 말다. ”

진정 '별것' 으로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나라는 과연 안녕한가.

죽어가면서도 위선을 휘날렸던 죄값은 혹독하다.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이런 묘비명을 세워야 할 터. “다시 혼돈 - 흥망의 극단을 오가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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