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무례한 한국인 부끄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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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며칠전 수퍼에서 물건을 산 후 계산대로 갔다.

내 앞에는 동남아인 노동자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례가 오자 계산대의 직원이 계산을 했다.

그 동남아인은 영수증을 훑어보더니 과자 한봉지 가격이 "8백원이냐?" 고 영어로 물었다.

직원은 "뭐?

뭐?" 하면서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

그 사람이 다시 묻자 마침 곁에 있던 학생이 "8백원이 맞다" 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직원은 "1천원짜리 과자가 (슈퍼가격으로) 8백원 맞는데, 뭐?" 하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도 계속 벌어졌다.

그 수퍼는 손님이 직접 물건을 봉지에 담아야 하는 셀프서비스였는데 동남아인은 이걸 몰라 그냥 기다렸다.

그러자 직원은 '셀프' 라고 써놓은 푯말을 가리켰다.

동남아인은 영어로 "왜 그런가?" 하고 물었다.

직원은 "셀프가 셀프지, 뭐?" 하고 대꾸하고는 그 사람이 우리나라 말을 못알아듣는 것을 이용해 마구 신경질을 부렸다.

그 외국인은 TV화면에서 본 전형적인 동남아 노동자였다.

행색도 초라했다.

만일 그 사람이 선진국인 일본인이나 미국인이었다면 어땠을까.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TV의 시사프로그램에서 손가락까지 잘린 동남아 노동자가 온갖 학대를 받고도 월급 한 푼 못받고 내동댕이쳐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난 그때 그런 악질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한국인은 소수인 줄 알았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 사람인 것이 부끄럽다.

일본이나 미국사람에게는 온갖 친절을 다 베풀고 과잉친절 (?

) 로 오해까지 사면서, 못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온갖 욕설을 다 퍼붓는 천박한 품성을 가진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이정도〈고3·서울관악구당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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