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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얼음 속에 잠든 미라의 저주-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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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등반을 하다가 조난을 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헬무트 시몬과 그의 아내 에리카는 생각을 바꿨다. 왜 바꾸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봉’을 발견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이로 따지자면 성서 속 인류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훨씬 연배가 많은 인간을 발견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실존 인물이냐, 신화 속 인물이냐는 비록 주장이 약하지만 논쟁거리다.

돌도끼 향수에 대한 추억으로 관광명소가 돼

그러나 그보다 무려 1천 년이 앞선 ‘돌도끼’의 석기시대 인간의 시신을 발견했으니 아브라함은 저리 가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을 발견했으니까 그렇다.

눈에 드러나는 사실 앞에서는 어떤 주장도 통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외치의 나이를 측정하는 과학적 방법까지 잘못된 것이라고 무시한다면 그건 모를 일이다. 세상에는 화석을 부정하고, 탄소연대가 과학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다. 또 지구가 평편하다는 사람들도 많다.

‘외치’가 급작스럽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따라서 외치의 가격 역시 급상승했다. 당연히 외치를 발견한 사람의 공로도 인정받아야 한다. 국내 모 국회의원의 재미 있는 비유처럼 헬무트 부부는 그야말로 “길가다 지갑 주운 것이나 다름 없다”

알프스에서 발견된 미라 외치는 가장 오래된 인간의 시신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그러니까 돌도끼로 사냥하고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은 그야말로 원시인의 시체가 알프스의 한 얼음 골짜기에서 발견됐다는 소문이 들리자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수가 늘기 시작했다.

“와, 아브라함 보다 더 오래된 사람이 알프스에서 발견됐다고? 쇠로 만든 칼이나 창도 없이 돌도끼를 갖고 다니면서 짐승을 사냥했다고? 그러면 알프스가 이스라엘보다 더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곳이 아닌가?”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바로 외치가 발견된 알프스 골짜기에 생생하게 숨쉬고 있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언어의 문자조차도 없었던 원시시대가 생생히 숨쉬고 있는 곳이 이탈리아 소속 알프스 골짜기였다. 왜 호기심이 안 가겠는가?

아브라함보다 더 오래 된 미라

미라 외치를 발견한 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당연히 많아 호텔과 레스토랑과 같은 관광시설이 돈을 많이 벌었다. 뿐만이 아니다. 외치의 고고학적 가치가 대단했다. 고대 이집트 미라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미라다. 그리고 시신에 화학약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100% 자연산 미라다.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겠는가?

헬무트는 발견자의 몫(finder’s fee)을 달라고 주장했다. 발견자의 몫이란 고대로부터 내려온 서양사람들의 관습이라는 틀에 박힌 말이다. 예를 들어 사슴 사냥을 온 사냥꾼에게 사슴이 어디에 있다고 말해주면 사슴을 사냥한 사냥꾼은 발견한 사람에게 일정한 몫을 지불하는 것이다.

아마 발견자의 몫의 개념이 발전하면서 소개비라는 용어가 생겼을 것이다. 요즘 공인중개사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복덕방도 그래서 자리를 잡은 것이고, 아주 화려하게 보이는 직종 컨설턴트도 마찬 가지다.

또 변호사도 마찬 가지가 아닐까? 따지자면 발견자의 몫, 다른 사람은 전혀 모르는 이미 알고 있는 자신만의 지식에서 출발한 업종이다.

헬무트는 외치를 발견한 것에 대해 돈으로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해당 주 정부는 관광객이 늘어 주의 수익이 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은 지불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 법원은 부부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주정부는 미라 외치를 보관하는데 엄청난 많은 비용이 들어 지급할 수 없다며 항소하기도 했다. 수익은 늘어났지만 외치에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이다.

밀고 댕기는 법적 공방이 무려 17년이나 계속 됐다. 외치를 둘러싼 ‘돈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된 것이다. 그러나 엄정한 법을 집행하는 법원은 결국 헬무트 부부에게 15만 유로(약 26억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발견자의 몫 26억 원

외치를 처음 발견한 헬무트 시몬 부부. 독일 출신의 그들은 외치를 발견한 대가로 26억 원을 요구했다.

그야말로 횡재(橫財)를 만난 것이다. 26억이 얼마인가?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50평, 60평 가격 밖에 안 된다. 그러나 그 돈이면 외국에서는 성(城)을 살 수 있는 돈이다. 성을 살 수 있다는 돈은 그야말로 자기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자기의 나라를 살 수 있다는 돈이다.

이제까지 발견된 시신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외치는 화가 났다. “적어도 내가 살았던 시대에는 서로 맘에 맞지 않으면 돌도끼로 싸우기는 했지만, 돈으로 만사(萬事)를 해결하지는 않았다. 돈 갖고 장난치는 컴퓨터 시대인 인간들 정말 골 때리는 사람들이군!”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발견한 헬무트를 시작으로 저주를 내리기 시작했다. “야, 나를 발견하지 말고 얼음 속에서 자도록 가만히 놔두지, 왜 날 깨웠나? 그리고 난 돈 갖고 장난치는 인간들이 너무나 미워!”

외치는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 외치는 그저 알프스 산골짜기에서 발견돼 그 곳 주민들에게 관광수입으로 돈이나 안겨다 주는 그저 반응이 없는, 영혼이 없는 미라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해(害)를 가한 자에게는 그에 걸 맞는 철저한 복수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애증(愛憎)의 그림자가 가득 찬 미라였다.

복수를 생각할 줄 아는 미라가 외치였다. 복수는 하등동물에서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생존을 위한 삶의 본능이다. 우리를 공격하는 각종 바이러스가 그렇다. 외치도 그런 것 같다. 자신을 여지 없이 깎아 내리고 자존심을 갈겨 뭉긴 인간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계속)

▶ [e칼럼] 알프스 얼음 속에 잠든 미라의 저주-상

김형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