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대책 서두르는 정부·한국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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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환위기가 금융위기로 번지며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상황으로 치달음에 따라 정부와 한은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향후 내놓을 대책은 '사후약방문 (死後藥方文)' 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금융시장과 기업을 뒤덮고 있다.

◇ 정부 = 어떤 식으로든 서둘러 교통정리를 하지 않으면 금융.기업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은 갖고 있다.

▶종금사 대책 : 장.단기 두가지다.

단기적으로 급한 불을 꺼야하는데 은행의 콜자금 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추가적으로 일부 부실종금사의 영업을 제한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이다.

이 때 은행의 콜자금이 묶이는 부작용을 막기위해 한국은행에서 부족한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또 예금 부분인출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급한 불을 끈 뒤에는 종금업종 전체를 재편한다는 복안이다.

예컨대 종금사 간판을 계속 다는 곳은 아주 우량한 몇개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타 금융기관과의 인수.합병 (M&A) 을 적극 유도하기로 했다.

이 때 종금사 인수로 손해를 보게되는 은행.증권사에 대해서는 예금보험기금이 손실을 보전해 주도록 한다는 것이다.

▶은행대책 :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자기자본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실채권을 줄이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성업공사내 부실채권정리기금 10조원을 15조원으로 늘릴 방침이다.

다른 하나는 은행의 증자를 돕는 것이다.

은행들이 후순위채를 발행한뒤 연.기금에서 인수하는 방안이 있다.

또 예금보험기금이 채권을 발행한 뒤 이를 은행 증자주식과 맞바꾸는 방식도 거론된다.

◇ 한은.은행권 = 시중의 자금흐름을 회복시키기 위한 응급처방은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종금사의 신용회복, 다른 하나는 은행의 여신회수를 막는 일이다.

▶종금사 정리 : 우선 정리할 곳과 살릴 곳을 빨리 가려 모든 종금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불신과 불안감을 차단해야 한다.

자금난에 빠진 종금사들 스스로도 "이런식으로 질질 끄느니 차라리 빨리 정리되는 게 낫겠다" 는 말을 할 정도다.

대신 살릴 종금사들에 대해서는 정부의 지급보증과 자금지원을 통해 확실한 보장을 해줌으로써 불안감을 말끔히 덜어내야 한다.

▶예금자 보호 확대 : 신용불안 원인중 하나는 9개 종금사의 영업정지 이후 예금자들이 예금을 즉시 찾을 수 없었다는데 있다.

지금이라도 신용관리기금을 동원해 영업정지중인 종금사 예금을 즉시 인출해 주고 앞으로 정리될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콜자금 공급 재개 : 시중은행들이 종금사에 대한 콜자금 공급을 기피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역전시킬 수는 없다.

은행들이 요구하는대로 보증서를 써줄 수 없다면 급한대로 국책은행을 동원해 종금사들에 대한 콜자금 공급창구로 활용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은행증자 : 은행이 신규여신을 중단하고 기존여신마저 회수하는 것은 국제결제은행 (BIS) 의 자기자본 비율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은행권에선 기업여신을 일거에 줄이지 않고도 자기자본 비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으로 증자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증시여건상 시장을 통한 유상증자가 불가능하다는 것. 대신 성업공사나 예금보험공사에서 자기자본 비율을 맞출 만큼 시중은행에 출자를 하면 당장 기업여신을 줄여야 할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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