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정동영의 무소속 출마, 명분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2007년 집권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지낸 정동영 전 의원이 고향인 전주 덕진 재선거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피선거권을 지닌 정치인이 출마하는 건 기본적으로 본인의 정치적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도 공동체 발전을 위한 순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 더군다나 정권의 여당 대표와 통일부 장관을 지내고 한때 국가를 책임지겠다고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정치 지도자급이라면 원칙과 명분에 보다 투철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이번 출마는 여러모로 이런 측면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정치인이 언행을 지키며 일관된 명분과 노선 그리고 당적을 유지해야 하는 건 한국 정치의 뿌리 깊은 숙제다. 대선이나 정권교체만 겪으면 소리(小利)를 위해 당적과 신념을 바꿨던 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전주 덕진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2선을 쌓았지만 지난해 4월 총선 때 지역구를 바꿔 서울 동작을에 출마했다. 본인은 수도권 결투를 위한 당의 명령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최종 결정은 본인이 한 것이다. 아울러 대선 패배 후 수도권에서 당선돼 화려하게 재기하려는 계산도 있었으리라고 본다. 그러기에 “동작에 뼈를 묻겠다”고 표심에 구애했던 것 아닌가. 총선 패배 후 지금까지 동작을의 당원협의회를 맡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랬던 그가 마음대로 지역구를 바꾼 것은 지역 유권자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당원으로서 당의 질서를 해친 행위다.

지도자급 정치인일수록 지역주의에 기대지 않고 소신 있는 노선을 펴야 한다는 건 한국 정치의 또 다른 숙제다. 그가 험난한 수도권을 버리고 안락한 고향을 택한 것은 이런 기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난 총선 때 그가 고향에 출마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고향을 떠날 때는 수도권 돌파라는 멋있는 명분을 내세웠다가 돌아갈 때는 슬그머니 그 명분을 접는 것이다. 정 전 의원에게는 자숙(自肅)의 문제도 있다. 그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득표의 절반에 턱걸이하는 참패를 기록했다. 참패에는 노무현 대통령 정권과 당의 문제가 크지만 후보 자신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렇다면 자숙의 기간이 좀 더 길어야 하지 않을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도 대선 패배 후 복귀하기는 했지만 정동영만큼의 참패는 아니었다. 정 전 의원은 “민주주의를 구하겠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그가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시절, 386 좌파의 공세로 나라의 정체성과 민주주의가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