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도 책임용역 왜 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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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실공사.사업비폭증.공기지연등 문제투성이 경부고속철도 사업에 이번엔 '외화낭비' 의혹이 추가됐다.

대선 (大選) 정국 속 국제통화기금 (IMF) 협상 파문이 몰아닥친 혼란한 시기에 고속철도공단이 연간 5백만~6백만달러에 불과하던 미국 벡텔사와의 '자문용역' 을 6~7배나 비싼 '책임용역' 으로 바꾼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전혀 필요 없다" 며 의아해 한다.

문제의 계약은 우선 벡텔에 지우겠다는 '책임' 이 분명하지 않다.

지난 4년간 그렇게 부실관리를 한 공단.당국도 '책임' 을 진게 없는데 새삼스레 벡텔에 지우겠다는 책임이 과연 무엇일까. 공단측은 "경부고속철도의 공기.사업비등 건설일정을 밑바닥부터 재점검해 사업을 책임관리하되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용역비의 10%까지' 변상시키는 책임" 이라고 답변하지만 책임여부는 사업이 끝나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2년계약으로는 물을 방법이 없다.

더구나 공단의 능력으로는 벡텔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공단측의 갑작스런 계약체결은 나중에 사업이 잘못될 경우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돈을 더 주고 벡텔을 끌어들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그래서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외국인을 불러들여야 할 만큼 고속철도 건설이 긴박한 상황은 아니다.

현재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돼도 향후 2년간은 노반 (路盤) 공사가 고작이고, 때문에 벡텔이 관리할 업무는 별로 없다.

더구나 새정부.IMF지원체제에서 고속철도사업의 계속 여부가 불투명하다.

현 정부조차 아직 '교통개발원이 발표한 수정계획' 을 정부방침으로 확정하지 않은채로 있다.

IMF협약에 따라 어차피 대규모 국책사업 계획은 전면 재조정이 불가피해졌고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해도 일정은 상당부분 재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할중복에 대한 논란도 있다.

사업을 공단.벡텔이 중복관리하고 외국설계검증팀.외국감리단등 발주자.관리자.감리자간의 역할이 많은 부분 중복된다.

역할중복은 비용낭비를 부를 뿐만 아니라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한다.

'모두의 책임이면서 누구의 책임도 아닌' 상태가 되기 쉽다.

법적인 문제도 지적된다.

건설기술관리법의 책임감리제와 건설산업기본법의 건설관리제도가 동일 현장에서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다.

이번 계약은 집행을 중지하든지, 아니면 공단.책임감리단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 사업을 아예 벡텔에 맡기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그러나 공단 감독관청인 건설교통부는 문제의 계약에 대해 "승인사항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 고 말하고 있다.

음성직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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