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보고 세로 읽기]진달래가 수상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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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것은 실화임! 몇년전 TV 토론 프로그램의 일이다.

전교조에 '심정적' 으로 가까운 소위 '문제 교사' 들과 그들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칭 '건전세력' 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이 마주 앉아 그 교사들이 만든 교육용 책자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지나가던 소도 웃을 대목 하나를 봤다.

위의 교육용 책자에 진달래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건전세력 왈. "애들 보는 책에다 진달래 이야기를 해도 되는거요. " 문제 교사 답.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건전세력 왈. "아니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오, 진달래는 붉은색 아니오, 붉은색!

거기다 진달래는 북한 국화인데 그걸 순진한 아이들 책에다 실어도 되는 거요. " 그때 나는 내가 과연 90년대에 살고 있는게 맞는지 잠시 헷갈려 얼굴을 세게 한번 꼬집었다.

90년대가 맞긴 맞았다.

정신을 수습하니 돌연 걱정이 들었다.

진달래에 대한 아이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려면 봄이면 분수 모르게 방방곡곡 피어나는 그 진달래를 발본색원하여 모두 엄히 다스려야 할 터인데 저분들이 그 일을 어찌 감당할꼬 하는…. 아마 그분들은 어릴적, 문교부에서 검인도장을 쾅쾅쾅 찍어준 검정 교과서 공부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공부를 했다 해도 김소월 시인의 시 '진달래 꽃' 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간밤에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고 있던 중이거나 아니면 그놈의 진달래를 '즈려 밟고' 간다고 하니 별 문제 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분들이 진달래에 혐의를 둔 것은 짐작컨대 단어 자체가 아니라 문제의 요소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 혹은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상징이나 은유법이었던, 말하자면 제법 고급한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진달래의 붉은색이 '불순함' 을 상징한다고 보는, 아주 세련된 상상력과 해석학을 발동시켰을 법하다.

그런데 붉은색이 상징하는 것은 열정.고난 등등을 비롯해 그 수가 소 터럭만큼 많다.

이런 것쯤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발가락으로도 부릴 줄 아는 상징기술이다.

균형적 사고가 부재한 곳에서의 맥락읽기는 '셀프 서비스' 밖에 되지 않는다.

일전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소설의 작가들이 무더기로 검찰의 '집합' 명령을 받았다.

'시범 케이스' 로 걸려든 것이다.

채만식.정지용.김기림.고은.신경림 등 한국 현대문학의 봉우리인들이 그들이다.

검찰이 밝힌 '집합' 이유는 혹자는 글의 맥락이, 혹자는 전력이 불순해서란다.

채만식의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신경림과 고은 시인을 TV에 출연시킨, 정지용의 '향수' 를 '열린음악회' 에서 연주한 방송국은 이제 큰일났다.

당신들도 곧 '집합' 이다.

검사들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 공부에 바빴겠지만 그래도 잠시 시간내어 '향수' 를, 신경림의 '농무' 를 공안적 상상력의 맥락으로가 아니라 서정의 맥락으로 읽어본 적이 있냐고. 이 개명의 시대에 왜 자꾸 위의 '진달래 해프닝' 이 뒷머리를 잡아끄는지 모르겠다.

이성욱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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