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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치카식 주택 ‘댜오러우’, 도적으로부터 ‘나’를 지켜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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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10면

청나라 말엽에 태어났거나, 그때 활동했던 유명 인사들의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부모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얼굴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식구들이 모두 나서 짐을 싸기 시작하는 대목. 이어 요란스러운 말발굽 소리와 비명, 총 또는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들이닥치는 도적들. 낮에는 평범한 백성으로 활동하다가 밤이 되면 산적으로 돌변하는 중국 민간의 도적떼 전통은 유명하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문화-담<3>

중국의 ‘4대 기서(奇書)’로 이름을 올린 『수호전(水滸傳)』은 요즘의 산둥(山東) 양산박이란 곳에 모여들었던 도적들을 다룬 이야기다. 이 책이 민간의 최고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게 된 배경은 간단하다. 양산박 도적 영웅들의 활약상이 그만큼 쉽게 독자들에게 어필할 만큼 일반적인 주제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북방에서는 이족들의 침입이 잦았다. 이들이 강한 무력을 앞세워 중국의 북방을 점거하면,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남으로 이동하는 게 상례였다. 따라서 남쪽에서는 먼저 정착한 사람과 나중에 들이닥친 사람이 벌이는 다툼, 그와 달리 벌어지는 각종 전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기를 동원해 이웃 마을 사람들과 벌이는 작은 싸움, 관군을 공격하는 조직화한 도적떼의 침입, 무력한 통일 왕조의 말기적 증상을 틈타 때로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도 했던 민란(民亂)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나라 말기에 살았던 유명 인사들의 회고록에 자주 등장하는 전란은 대개 이런 일들이 마을 단위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다.

중국 남부는 북방에 비해 더 다툼이 잦았다. 어느 중국 인류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한 중국 남부지역 촌락이 극단적으로 전란을 많이 겪은 경우는 1년에 약 130회 정도. 그곳의 향토 기록, 즉 향지(鄕志)를 근거로 해 추산한 싸움의 횟수다. 1년에 130회라면 3일에 한 번씩은 크고 작은 싸움을 겪었다는 얘기다. 외침이 잦았다고 하는 한반도 사람들이라도 좀체 상상하기 어려운 빈도 높은 싸움이다.

이 때문에 북방 촌락 못지않은 높은 성벽이 마을마다 들어섰을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중국 남부 지역의 그 흔했던 싸움의 전통을 찾아볼 수 있는 흔적이 지금 광둥(廣東) 카이핑(開平)이란 곳에 남아 있다. 이른바 ‘댜오러우’다. 조라는 글자는 ‘돌집’이라는 뜻이다. 교두보라고 할 때 보(堡)라는 글자를 그 뒤에 붙이면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나 일본군이 자주 사용하던 토치카의 뜻이다.
카이핑에 셀 수도 없이 많이 들어서 있는 이 댜오러우는 청나라 말, 또는 1900년대 초반인 민국 시대에 세워진 것들이다. 광둥에서 동남아로 나가 돈을 벌어들였던 화교(華僑)들이 고향으로 돈을 보내 지었다는 건축들이다.

그러나 실제 연원은 명(明)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 환경이 불안해 도적이 들끓고 이동하는 인구가 많아 크고 작은 싸움이 늘 벌어진 지역 전통을 감안해 식구들을 외지 침략자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돈 들여 지은 집들이다. 유럽의 성채 일부와 중국의 전통적인 가옥 건축 양식이 결합돼 만들어진 것들로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돼 있다.

이들 댜오러우는 대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향한 형태로, 영락없이 적의 습격에 대비한 방어 구조다. 아울러 자세히 들여다보면 벽면에 총구들이 만들어져 있다. 집으로 다가서는 적들을 향해 조준 발사가 가능하게끔 만든 것이다. 역시 망루 성격의 건물도 들어서 있으며, 무엇보다 튼튼한 담이 눈길을 끈다.

양식도 비교적 다양하다. 우선 중루(衆樓)가 있다. 마을 뒤편에 만들어져 유사시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대피하는 시설이다.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투자해 만들었다고 한다. 도적떼가 덮치거나 홍수 등 천연재해가 마을에 닥쳤을 때 함께 대피하는 장소다. 규모가 크고 담장 외부에 특별한 장식이 없는 게 특징이다. 다음은 마을의 부자가 단독으로 짓는 순수 거주용 건축인 쥐러우(居樓)다.

내부 공간이 넓고 생활을 위한 시설이 많다. 다음은 겅러우(更樓). 앞의 두 건축이 마을 뒤편에 지어진 것과 달리 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 탐조등과 종(鐘) 등 위급함을 알리는 시설들이 들어 있다. 앞의 두 건축 양식이 긴급 시 대피 또는 거주를 위한 것이라면 겅러우는 다가오는 위험을 미리 살피기 위한 망루의 성격이 강하다.

댜오러우에는 남에게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건축 개념이 깊이 담겨 있다. 내 담 안에서 다가오는 낯선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이 무엇보다 먼저 떠올려지는 건축이다. ‘너’와 ‘나’는 중국인 마음속에서 철저하게 이질적인 개념이다.


중국 광둥성 카이핑에 있는 토치카형 주택 댜오러우의 모습이다. 외부인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성채의 구조를 지닌 주택이다. 명대와 청대에 걸쳐 지어진 카이핑 일대의 댜오러우는 특이한 주거 형태와 규모로 인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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