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일본 투어서 17억원 번 이지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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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호 16면

이지희는 LPGA 진출보다 일본 투어에서의 성공을 원한다. 지난해 일본여자오픈에 출전, 선전하는 모습.

지난해 11월 30일.
일본 여자프로골프 투어 최종전이자 메이저대회인 릿코 LPGA 챔피언십 4라운드가 열린 미야자키현의 미야자키 골프장 18번 홀 그린.

지난해 상금 가장 많이 받은 한국 여자 골퍼는?

후도 유리가 1m 버디 퍼트 기회를 잡았다. 6언더파로 고가 미호와 공동 선두인 후도가 이 퍼트를 넣으면 우승 확정이다. 후도의 퍼트는 살짝 빗나갔다. 경기를 끝낸 후 TV로 이 장면을 가슴 졸이며 지켜본 고가 미호는 연장전을 준비하려 일어섰다. 그러나 후도의 1m 파 퍼트도 실패하고 말았다. 후도가 일본 골프여왕답지 않게 1m에서 3퍼트로 보기를 하면서 고가 미호는 우승을 확정했다.

이 장면에 가장 괴로워했던 선수는 후도 유리가 아니었다. 후도는 그냥 쓴웃음만 지었다. 가장 커다란 역전패의 아픔은 한국의 이지희(진로재팬)가 짊어졌다.

고가 미호의 역전 우승으로 이지희는 다 잡았던 2008년의 상금여왕을 놓쳤기 때문이다. 고가는 이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하고 이지희가 부진해야 상금왕 역전이 가능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는 한국의 송보배였기 때문에 이지희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송보배는 4라운드에서 무너졌다.

대신 전미정이 선두로 뛰어나왔다. 전미정은 그러나 17번 홀에서 보기를 하더니 18번 홀 그린 주변 벙커에서 홈런을 치고 말았다. 마지막 홀 더블보기로 덜커덕했다. 이지희는 “미정이가 저를 보더니 ‘언니, 미안해요’라면서 엉엉 울더라”고 말했다.

한국 거센 도전에 日 선수들 견제
일본 언론은 일본 투어 역사에 길이 남을 드라마틱한 역전승이라고 좋아했다. 고가 미호는 ‘무릎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모의 스타다. 한국인인 송보배와 전미정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상금왕에 올랐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투어의 일부 한국 관계자는 “후도가 고의로 실패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상금왕을 한국 선수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후도가 일부러 3퍼트를 했다”는 음모론이다.

큰 설득력은 없다. 골프는 팀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게다가 후도와 고가는 우승을 양보할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다. 그래도 한국 관계자들 중엔 아직도 후도의 3퍼트에 대해 말이 많다. “한국 선수들이 워낙 거세게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일본 선수들이 뭉쳐 견제를 한다”는 것이다.

후도 유리가 일부러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 투어에서 한국 선수의 활약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일본 여자투어에서 한국 선수는 상금 11위까지 4명이 들었다. 이지희(2위), 전미정(6위), 임은아(9위), 신현주(11위)다.

이지희는 상금왕이라는 타이틀은 놓쳤지만 돈 액수로만 보면 아쉬울 것은 없다. 1억1196만 엔을 벌었다. 10일 현재 환율로 15억원, 일본 엔화의 가치가 높던 연말 기준으로 보면 17억3000만원이나 된다.

‘지존’ 신지애가 지난해 국내에서 번 상금은 7억6000만원이었다. 일본 투어 9위인 임은아는 일본에서 그보다 많은 10억6000만원(연말 기준)을 벌었다. 국내 투어 9위인 김보경은 상금이 2억2000만원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지난해 일본 여자투어에서 번 돈은 합쳐 9억6000만 엔이다. 미국 LPGA 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벌어들인 1877만 달러의 60%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 투어의 한국 선수는 40여 명이고 일본 투어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은 10여 명에 불과했다. 지난해 일본투어에 진출한 한국 선수는 평균 10억원에 가까운 상금을 벌었다.

올해 일본 여자 투어 대회는 34개이고 미국 여자 투어는 31개다. 총상금은 일본이 27억8000만 엔(약 360억원), 미국이 5500만 달러(약 724억원)이다. 상금은 두 배 정도지만 일본 투어의 상위권 선수는 LPGA 투어의 메이저대회에 나갈 수 있고 일본에서 열리는 LPGA 대회에 출전이 가능해 그 정도 격차는 아니다.

선수층은 미국이 두터워 같은 실력을 갖춘 선수라면 일본에서 더 많은 상금을 벌 수 있다. 동양인이라면 더 그렇다. 미국 투어는 전장을 늘리고 있는데 동양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평가가 많다. 한국 선수가 체력과 힘에서 충분히 대비를 하지 않고 미국에 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아시안투어에서 상금왕에 올랐던 강욱순은 “미국 PGA 투어에 진출하려 미국에 다녀왔다가 몸이 완전히 망가져 몇 년 동안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일본 투어에서 뛸 경우 경비는 훨씬 적다. 미국 투어 선수들은 “짐 싸는 게 가장 큰일”이라고 투덜대는데 일본에선 아무 일도 아니다. 택배와 고속열차가 발달해 이동이 편하다. 캐디백 등을 대회장에서 부치면 다음 대회장에서 찾을 수 있다.

상금 외에 받는 +알파도 많다. 지난해 일본 투어 PRGR 레이디스에서 우승한 신지애는 상금 1400만 엔 이외에도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와 대회가 열린 미야자키현의 특산 소 한 마리, 1년 동안 먹을 사과를 받았다. 그의 클럽 후원사인 PRGR의 김성남 홍보팀장은 “부상만 해도 상금 가까이 되겠더라”고 말했다.

일본 투어 9위, 신지애보다 상금 많아
지난 3일 야마하 레이디스에서 우승한 황아름은 “모터보트에 수제 그랜드 피아노를 부상으로 받았다”고 했다. 프로암에 참가하면 두둑한 참가비를 받는다. 선수당 단가가 달라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대회당 한국 돈으로 수백만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엔 미국에 가야 국내 기업으로부터 스폰서를 얻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것도 아니다. 일본에서 뛰는 선수는 국내에 나오기 쉽다. 미국 투어에서 뛰는 선수들은 한국 대회에 나오려면 시차 적응 때문에 사실상 3주 동안 미국 대회를 쉬어야 하기 때문에 출전을 꺼린다. 한국 스폰서로선 일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를 후원하는 것이 효용이 낫다.

일본의 한국 선수들은 시차가 없고 의식주에 불편함이 없다.

신지애는 지난해 골프전문채널인 J골프의 J골프 매거진에 출연해 “일본 투어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우승할 때보다 일본 투어에서 우승했을 때 갤러리가 훨씬 더 많았고 선수를 극진히 대접했다”면서 “일본에서 많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신지애는 지난해 미국 LPGA 투어에서 예상외의 큰 성공(3승)을 거두지 않았다면 몇 년간 일본 투어에서 활동하려 했다.

일본에서 프로 골퍼에 대한 대우는 유별나다. 일본은 한 분야의 장인에 대해 한국인들이 보기엔 어색할 정도로 경외심을 보이는데 골프에선 프로 선수들이 그렇다. 국내에도 있는 ‘프로님 문화’는 일본이 발상지다. 양국의 투어를 취재한 J골프의 김성식 PD는 “한국에선 스폰서 위주이며 미국에선 선수와 스폰서, 방송사, 미디어가 수평적인 관계지만 일본에선 무조건 선수가 최고”라면서 “주관 방송사라도 선수의 허락을 받아야 겨우 인터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무대에서 뛰다 현재 군복무 중인 이동환은 “라커룸이나 편의 시설, 식당 등이 미국에 비해 일본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박세리의 US여자 오픈 이후 오랫동안, 뛰어난 선수가 최고 무대인 미국 투어에 가지 않고 일본으로 가면 매국노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요즘은 아니다. 요즘 10대 유망주들은 미국 투어에 한국 선수가 너무 많아 눈총을 받고 있다는 소식과 일본 투어가 실속이 좋다는 얘기를 알고 있다.

일본에서 성공하면 나오기도 쉽지 않다. 이지희는 “처음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가자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미국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면서 “일본 투어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메이저대회의 초청을 받을 수 있으니 그런 대회에만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미정도 같은 생각이다. “일본이 미국에 비해 수준이 별로 처지지 않는다는 자부심도 있다”고 했다.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의 영문 표기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JLPGA가 아니라 LPGA OF JAPAN이다. 미국 여자협회(US LPGA)에 비해 역사나 대회 규모, 상금 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자부심이다. 실제로 두 단체 모두 로컬 협회일 뿐이다. 메이저대회 출전권, 세계랭킹 산정 방식 등을 놓고 두 협회는 자주 충돌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 그린이 완벽한 파라다이스는 아니다.

일본 협회는 언론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언어 테스트를 강행했다. 리더보드 상단을 점령하기 시작한 한국 선수들을 막기 위한 진입장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 선수들이 우승하면 시청률은 떨어지고 일본 신문도 크게 다루지 않는다. 사정이 심각해진다고 느끼면 일본 협회가 한 단계 높은 강도의 대책을 낼 수도 있다.

최경주는 “일본 투어에서 뛸 때 한국 선수의 우승을 방해하는 미묘한 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일부 여자 선수는 “조 편성 등에서 손해를 본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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