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대선 공약점검]IMF 충격에 대한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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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제통화기금 (IMF) 의 융자조건 '보따리' 가 펼쳐졌다. 가혹하게 보이는 조치를 포함, 내년 나라.은행.기업살림까지 꼼짝없이 묶이게 된 것을 보고 많은 시민들은 '정부는 도대체 뭘했느냐' 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세 후보도 '국치 (國恥) 다' '정부와 여당 (?

) 이 책임져라' '정치권이 다같이 책임져야 한다' 는등 '원님행차 뒤에 나팔부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어떤 후보는 'IMF협상을 다시 하겠다' 고까지 했다 (이 재협상발언 때문에 IMF가 '차기 대통령이 과연 합의내용을 지킬까' 를 의심케 해 결국 후보들이 모두 서약하는 수모를 겪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 도대체 무엇이 '다음 대통령' 을 그렇게 흥분하게 했는가.

우선 나라살림부터 보자. 성장률 감축에 대해서는 3당후보 모두 "너무 가혹하다" 고 한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경상수지 적자폭 감축에 대해서는 괜찮다는 입장이다.

경제성장의 희생없이 선진국형 안정속의 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긴축을 위해 세금감면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는 점에는 세 후보 모두 공감한다.

그리고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이인제 (李仁濟) 국민신당후보는 간접세.교통세등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김대중 (金大中) 국민회의후보는 세금인상이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간접세등을 올리면 소득불균형의 골을 더욱 깊게 한다는 점에 金후보가 신경쓰는 것같다.

문제는 과연 세율 인상없이 조세감면대상 축소만으로 긴축재정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다.

통합 금융감독기구 설치문제는 그 실효성과, 재경원.한국은행간의 밥그릇 싸움등으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정당들은 그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제 IMF가 '통합' 에 깃발을 들었으니 이를 뒤집을 수 없게 됐다. 그런데도 세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이견이 여전하다.

이회창후보는 본래 입장대로 통합을 지지한다.

그런데 김대중후보는 "금융감독 기구의 통합보다 독립성.전문성이 더 중요하다" 며 평소보다 수그러들기는 했으나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IMF가 요구하는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이회창후보는 '너무 이르다' 고 생각하고 있다.

내년 외국금융기관 설립을 앞당기는 것만 적당하다고 했다.

김대중후보는 대조적이다.

대부분의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적당하다' 고 하면서 내년 외국금융기관 설립허용은 '너무 이르다' 고 했다.

이인제후보는 '금융기관 퇴출제도는 마련돼야 하지만 9개 종금사 영업정지는 너무 가혹하다' 고 했다.

지적해둘 것은,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의 문제였을뿐 금융기관의 구조조정과 감독강화는 금융부문 스스로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과제였다.

또 금융부문이야말로 개방에 의한 경쟁력 제고노력이 가장 필요한 부문이라는 점이다.

재벌정책중 기업회계가 국제기준만큼 투명해야 한다는 점에는 세후보가 다 공감한다.

그러나 결합재무제표의 작성에 관해서는 이회창.김대중후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이인제후보는 시기상조론이다.

부실기업에 대한 정부지원 축소에 관해서도 의견이 다르다.

이회창.이인제후보는 "점진적으로라도 그래야 되는 것 아니냐" 는 생각이지만, 김대중후보는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고 한다.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을 줄이는 문제에 대해 이회창.김대중후보는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고 하고, 이인제후보는 적당한 조치라는 생각이다.

지금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뿌리가 재벌 계열사간에 얽히고 설킨 돈관계와 과다채무라고 볼 때 결합재무제표의 작성, 상호지급보증관계의 단절을 통한 계열사별 독립경영은 하루 빨리 추진했어야 하는 과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김대중.이인제후보는 IMF가 요구하는 ▶무역자유화 ▶자본시장개방 ▶노동시장유연화 모두가 '너무 이르다' 고 한다.

이회창후보는 수입선 다변화제도 (대일수입규제) 의 폐지는 너무 이르지만, 외국인 주식취득비중을 높이거나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것은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무역보조금 축소는 세계무역기구 (WTO)에, 수입선 다변화제도 축소는 경제개발협력기구 (OECD) 가입시 이미 약속했던 것임을 지적해둔다.

융자조건중 가장 창피한 것이 외환보유고.금융기관 부실채권등에 관해 정기적으로 정보를 공개토록 한 것이다.

그래서 이인제후보는 그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또다시 외환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정부.금융기관등의 경영이 투명해져야 한다는 국내외의 지적에 따라 이회창.김대중후보는 '그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 는 자세다.

마지막으로, 김대중.이인제후보가 'IMF와의 재협상' 을 얘기하고 있다.

이회창후보 한사람만 "당장은 재협상하지 않되, 앞으로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자연스럽게 재협상하겠다" 는 다소 현실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이제 와서 IMF 융자조건을 재협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새 대통령이 다시 협상하겠다면 앞으로 한국 정부의 약속을 선뜻 믿으려 하겠는가.

한국에 대한 외국의 총체적 불신이 최근 경제위기에 한몫 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정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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