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은 지 1년 만에 첫 부부 나들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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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나들이였다.

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의 탄천변. 김인숙(53·여)씨가 남편 김삼랑(70)씨와 함께 한 발 두 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이곳에 나오기까지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부는 지난해 외아들(당시 26세)을 저세상으로 보낸 다음 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날 산책에는 법무부 국제법무과 변필건(34) 검사와 강윤정(41·여) 계장이 동행했다. 인숙씨는 “두 분이 옆에 없었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라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8일 법무부 국제법무과 강윤정 계장(맨 왼쪽)과 변필건 검사(맨 오른쪽)가 경기도 성남시 탄천변 잔디밭에 앉아 김삼랑·김인숙씨 부부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김태성 기자]


국제법무과 팀원들이 인숙씨 부부를 만난 것은 법무부가 올 초부터 시작한 ‘사랑의 손잡기 운동’에 참여하면서다. 당시 두 사람은 아들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은 직업 군인(하사관) 생활을 하면서도 신학교에 다니며 목사를 꿈꿨다. 특히 몸과 마음이 성치 않은 부부에게 든든한 의지가 돼 줬다. 인숙씨는 6년 전 조울증으로 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삼랑씨는 오른쪽 손가락 네 개를 사고로 잃은 지체장애 4급으로 3년 전 무릎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하다.

그런 부부에게 항상 살가웠던 아들은 지난해 4월 교회에서 만난 자폐증 환자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그날 이후 부부는 ‘고려장’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왔다. 경제적 압박도 심해졌다. 삼랑씨는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해, 인숙씨는 남에게 명의를 잘못 빌려줘 신용불량자가 됐다. 부부는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한 달에 60만원씩 정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절반 이상이 치료비로 나간다.

국제법무과 백기봉 과장과 팀원들이 인숙씨 집을 찾은 것은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팀원들은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서너 명씩 조를 짜 과천에서 성남까지 부부를 만나러 왔다. 이들은 생활비와 먹거리, 생활용품을 챙겨 왔다. 강 계장은 거의 매일 인숙씨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가해자 부모로부터 선처를 부탁하는 편지를 받으니 우울하다”는 하소연도 한참을 들었다. 인숙씨는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을 주느냐”며 수화기를 붙들고 울기도 했다.

부부는 다음 달 수원지검에서 열릴 ‘범죄 피해구조심의회’를 기다리고 있다. 살인 범죄 피해자 유족에게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하는 제도가 있는데 부부는 모르고 있었다. 지난달 팀원들은 관련 서류를 챙겨 구조금 신청서를 접수했다.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숙씨는 “우리 부부가 탄 배에 이 분들이 사공이 돼 노를 저어 준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사랑의 손잡기 운동=법무부와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전개하는 캠페인으로 각 기관이나 단체의 한 부서가 수형자, 범죄 피해자, 다문화 가정 등 결손 가정과 결연을 맺고 후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이다. 후원 및 참여를 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법무부 창의혁신담당관실(02-2110-3110, haeryun@moj.go.kr)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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