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IMF협상 정확한 인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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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 (IMF) 의 금융지원규모와 지원조건을 놓고 우리 정부와 IMF는 팽팽한 줄다리기 협상을 벌였다.

이번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은 우리의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거시경제정책의 내용과 금융산업 구조개편 계획 등 핵심쟁점에 대한 양자간의 시각차에서 기인한 것 같다.

정부는 가능한 한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반면 IMF는 매우 강도 높은 충격요법을 도입해야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최종 협상 결과는 IMF의 입장이 대폭 수용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특정 입장의 옳고 그름을 따져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정확한 인식과 평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즉 이번 협상에서 우리 정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밀려 IMF의 입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우리 경제가 앞으로 겪게 될 부담과 고통이 정당화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국민은 우선 단기적인 고통에 불만을 표하게 될 것이고 정책추진과정에서 우리 정부와 IMF간에 마찰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결국 우리 경제의 회복을 지연시키고 불필요하게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결과를 수반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금번 금융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한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IMF가 권고하는 강도 높은 정책 패키지 (policy package) 의 채택이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이를 국민에게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이는 오히려 당면문제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제고시킴으로써 각 경제주체들의 구조조정노력을 촉진시켜 줄 것이다.

우리는 수년 전부터 과거의 정부주도형 경제발전 전략이 한계에 부닥쳤다는 진단을 자체적으로 해 왔으며 21세기 정보화.세계화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경제운용방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적 상황을 핑계로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려 했으며, 늘 그랬듯이 이러한 방식은 경제주체들에게 확고한 신호를 전하지 못했다.

다른 경제주체들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자기 자신은 변화하기를 꺼려 왔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엄청난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이번 위기는 시기가 다소 다를 수 있겠으나 피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따라서 이번 위기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오히려 문제만 악화시킬 것으로 판단된다.

어렵더라도 IMF가 제시한 정책을 받아들이고 차질없이 이행하는 것이 우리 경제를 위기로부터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주체들의 체질개선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IMF와의 순조로운 정책협조는 우리 정부와 정책의 대외신뢰도를 높이는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신속히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우리 경제가 안고 왔던 모든 문제점들을 가감없이 밝히고 최선의 해결책을 IMF와 함께 모색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정책분야가 광범위한 만큼 IMF 외에 세계은행 및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국제금융기구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와의 정책협의도 적극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 세계 각국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이들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 것이냐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문제가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강도높은 자구노력과 긴밀한 국제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다.

이번 금융위기로부터 우리가 배운 가장 고귀한 교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경제여건에 과감하고 능동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우리 정부의 젊은 관리들을 학습시키는 교육기회로도 활용해야 할 것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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