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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무너진 경제 되살리자…이제 허리조르고 다시 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제통화기금 (IMF) 자금지원이 확정되면서 이행조건에 따른 국내경제에의 충격이 때마침 찾아든 동장군 (冬將軍) 의 매서운 추위와 겹쳐 우리의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피해야 할 일은 두가지다.

그 하나는 IMF의 지원을 받은 사실을 지나치게 자기비하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우리 국민도 주눅들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진국중에서도 영국 등이 이미 일시 IMF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긴 일이 있다.

다른 하나는 IMF가 우리에게 못할 짓을 강요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필요해 IMF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섣부른 애국심은 진정으로 나라경제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당장의 어려움만 보지 말고 눈을 들어 다가올 밝은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IMF가 하지 말라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이런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애당초 선진국이 될 수 없었던 일이다.

우리가 내부의 지도력부재와 구조적 장애요인 때문에 늑장부리고 해오지 못한 개혁을 차제에 철저하게 해낸다하는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저 (低) 성장경제와 대량실업이 의미하는 바를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실업자가 1백20만명이 생긴다고 경고하는 분위기속에서도 IMF의 지원이 있으면 문제가 이제 해결되는 것 아닌가하는 안이한 자세도 없지 않다.

이것은 천만 오해다.

이제까지는 앞으로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말로만 떠들었지 실제 현실로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세금이 올라가고, 임금이 줄어들고, 잘못되면 그나마 일자리라도 없어질 지 모르는 차가운 현실이 눈앞에 닥칠 것이다.

소득이 줄면 모든 분야의 소비가 줄고 그래서 장사는 매기 (買氣)가 없어질 것이고 경제는 움츠러들 것이다.

대량실업의 가능성은 최근 10여년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다.

때문에 새로운 정권은 국정의 최우선목표로 고용안정을 삼아야 하는데 그만큼 국민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 내가 감원의 대상이 돼야 하고 희생돼야 하는지 정부가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만약 사회적으로 차분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가자는 합의가 전제되지 못하면 실업인력의 분노가 사회적 통합력을 해치는 불안요인이 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앞으로 제일 중요한 과제는 저성장 - 초긴축경제라는 기조하에서 기업의 경영자와 근로자가 자신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어떠한 합의를 만들어 내는가다.

즉 상당기간 기업별로 임금총액의 동결을 통한 실질임금의 감수를 받아들이되 기업이 고용안정에 최선을 다하고 기업간의 인수합병시 꼭 필요한 고용조정은 대폭 유연화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노조도 앞으로는 임금인상보다 고용안정이 중요한 활동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가 요구된다.

새로운 정부는 기업과 근로자가 생산성향상에 진력할 수 있도록 물가안정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물가가 흔들리면 임금동결 의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부실대기업을 시장원칙에 맞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통한스럽지만 이제라도 부실종금사와 은행의 뒤처리를 제때에 신속하게 하지 못하면 틀림없이 더 큰 후회를 할 것이다.

따라서 금융산업 구조조정의 후유증이 클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가 신용공황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해 일단 국민을 안심시키고 부실기관은 과감하게 수술해 대외신인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려는 대선후보는 어려움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내놓고 난관을 헤쳐갈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표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지역주의나 당리당략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를 위기에서 탈출시키는 강인한 지도자의 계획을 보여주고 국민으로부터 인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국민이 미래를 맡기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제부터 다시 한번 뛸 각오를 추스르게 하려면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이 나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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