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산되는 금융위기 파고 긴급점검]러시아…IMF 긴급차관 도입 협상 들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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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러시아의 금융관계자들은 동남아와 한국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러시아에도 밀어닥칠 것을 우려해 연일 대책회의를 갖고 있다.

이는 "지난 10월 이후 주로 외국계 증권회사들이 러시아에서 자금을 빼가기 시작했다" 는 일부 시중은행 및 증권사 관계자들의 보고뒤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11월20일 이후 CS퍼스트 보스턴.도이치 모건그런펠 등 러시아 금융시장의 큰손들이 러시아 정부채권을 매각하고 약 50억달러에 달하는 달러화를 회수해갔다.

이들이 회수한 50억달러는 러시아 증시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 (약 2백억달러) 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당장 이에 영향 받아 주가가 하룻만에 8.5% 하락하는 등 몸살을 겪기도 했다.

데니스 키셀요프 중앙은행 부총재는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지난 11월26일까지 금융시장 동향을 분석해 "러시아 정부채권을 재매입한 시중은행들이 약 3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고 밝혔다.

일부 시중은행들의 경우 대출 중단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환전소에서는 달러 가치의 추가 상승을 예상해 '달러 없음' 이라는 팻말이 다시 나붙기 시작했다.

그러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보유 외화를 풀어 루블화의 안정을 도모하는등 즉각 외환시장에 개입하고 나섰다.

또 모스트방크등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중은행들도 외화예금 인출시 5천달러가 넘는 금액에 대해서는 이틀전 미리 인출 예약을 하도록 외환 통제를 강화했다.

중앙은행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단기 금리를 연 21%에서 28%로 인상했다.

러시아 재무부도 즉각 미국에 2명의 고위관리를 파견해 국제통화기금 (IMF) 의 차관경여 문제를 협의했다.

소식통들은 약 40억~50억달러 규모의 차관 제공을 놓고 토론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금융시장 주변에서는 올해말까지는 모두 90억달러에 달하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다.

리전트 유러피언사 모스크바 사무소의 에릭 크라우스는 "외국인 투자자금은 대부분 정부채권에 투자돼 있다.

투자자금의 이탈을 방지하려면 이자율을 올려야 하는데 이럴 경우 러시아의 부채는 IMF의 권고목표치보다 훨씬 커진다.

그러면 IMF가 지난해 이미 약속한 1백억달러의 차관 제공이 차질을 빚게 된다" 고 말했다.

상황이 다급하게 전개되자 아나톨리 추바이스 제1부총리는 직접 미국과 유럽연합 (EU)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지난달 25일엔 세르게이 두비닌 중앙은행 총재가 직접 나서 상황을 설명했다.

두비닌은 기자들에게▶루블화가 지난 95년이후 안정을 유지하고 있으며▶국제수지상으로도 연간 2백억달러 규모의 흑자기조가 3년연속 유지되고 있고▶외환보유액도 계속 증가해 지난달말 현재 2백15억달러에 달한다는 점을 들어 금융시장의 혼란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만약 외국인 투자가들이 러시아 정부채권을 매각한다면 중앙은행이 국민연금등을 관리하고 있는 스베르방크의 기금을 통해 정부채를 재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장 안정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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