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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f Battle] 셰프 배틀 주제 바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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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마다 아이디어 반짝반짝 이상학 셰프

바나나 파스타와 겉절이,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다

‘위아더 월드(We are the world)’. 이상학 셰프팀의 요리는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파스타·겉절이·튀김·두부….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요리기법을 총동원한 버라이어티한 코스였다. “바나나는 단맛이 강해 디저트 외에는 잘 쓰이지 않아요. 그래서 단맛의 강도를 전체 코스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가장 중점을 두었죠.” 그의 요리는 바나나와 베이컨, 파스타와 겉절이, 바나나와 두부처럼 이질적으로 보이는 재료들을 결합해 묘하게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어냈다.

글=김현명,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애피타이저│구운 바나나 튀김과 매실소스 ①

짭짤한 베이컨이 바나나의 단맛을 중화시키고 매실소스는 튀김의 무거움을 덜어준다. 반죽에 레몬즙을 사용해 상큼함을 살렸다. 튀김은 가지와 잎사귀, 꽃이 달린 열매 같았다. 매생이가 기름에 튀겨질 때 물 위의 유성물감처럼 퍼져나가며 스스로 모양을 만들기 때문이다.

주요 재료: 바나나, 튀김반죽, 매생이, 베이컨 또는 프로슈토, 식용유, 매실소스(매실원액·설탕·레몬주스·복분자액), 올리브오일

만드는 과정

-바나나를 2cm 크기로 잘라 오일을 두른 팬에 익혀낸다. 이를 베이컨으로 말아서 밀가루를 묻힌다.

-튀김반죽에 물기를 제거한 매생이를 푼 다음 준비해둔 바나나를 묻혀 기름에 튀긴다.

-디스플레이: 요리 붓에 매실소스를 묻혀 흰 접시에 모양을 낸 다음 바나나 튀김을 올린다.

메인│바나나 파스타와 참가자미말이 ②

바나나로 만든 파스타와 참가자미로 바나나+오렌지 처트니를 싸서 구운 요리는 독창적이었다. 여기에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서양식 채소 곁들이가 아닌 한국식 겉절이를 내놓았다. 접시 위에는 바나나 한 조각 보이지 않는데 온통 바나나의 맛과 향이 넘쳤다.

주요 재료: 참가자미, 시금치, 바나나 리큐르, 바나나 오렌지 처트니(바나나·오렌지·양파·고수·레몬주스·할라피뇨고추·홍고추·소금·후추), 애플커리소스, 바나나 파스타, 달래, 냉이

만드는 과정

-포 뜬 참가자미에 데친 시금치를 깔고, 바나나 오렌지 처트니를 바른 후 동그랗게 말아준다.

-팬에 가자미 롤의 표면을 구운 다음 140도의 오븐에서 7분간 익힌다.

-파스타를 물에 삶아낸 뒤 팬에 가볍게 볶은 후 생크림과 바나나 리큐르, 스톡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인다.

디스플레이: 파스타와 가자미 롤을 접시에 담고 애플커리소스를 롤 위에 뿌려준다. 달래·냉이와 같은 계절 야채를 겉절이 소스로 무쳐 곁들이로 낸다.

디저트│바나나 두부 푸딩과 폰즈 소스 ③

바나나는 가열할수록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석쇠에 초벌구이를 한 다음 팬에 올려 한 번 더 졸여줬다. 두부의 담백함은 바나나의 단맛을 도드라지게 만들어 주었다. 네모 반듯하게 딱 떨어지는 모양이 아니라 푸딩을 흘러내릴 듯 디스플레이 해 식감을 더욱 자극했다.

주요 재료: 바나나, 캐러멜 시럽, 브랜디, 콩물, 간수, 젤라틴, 폰즈소스(폰즈원액·설탕·바닐라에센스)

만드는 과정

-바나나는 석쇠에 구운 뒤 껍질을 벗겨 주사위 모양으로 썬다. 팬에 바나나와 캐러멜 시럽을 넣고 약한 불에서 졸인 다음 브랜디를 넣고 식힌다.

-냄비에 콩물을 담아 약한 불에 저어가며 끓여준다. 이때 거품은 제거한다.

-불을 끈 뒤 천연 간수와 젤라틴을 넣고 천천히 저어주다 응결되면 고운 천에 두부 건더기만 걸러낸다.

-준비된 작은 컵에 두부와 바나나를 번갈아가며 층을 쌓아 부은 다음 냉장고에 굳힌다.

디스플레이: 두부 푸딩을 그릇에 옮겨 담고, 폰즈소스를 붓는다. 과일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감자 맛, 고구마 맛 난다는 말 들었을 땐 아차 싶었죠”

배틀 진행 스태프들은 이상학 셰프팀을 ‘꽃보다 셰프팀’이라고 불렀다. 이들 꽃미남 3인방은 요리도 멋지고 수월하게 해냈다. 게다가 내놓는 요리마다 아이디어와 창의성이 반짝거렸다.

“너무 복잡하지 않고, 사람들이 이런 음식이면 나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쉬운 요리를 만들고 싶었어요.”

호텔에서 국빈 만찬이나 연회 음식 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 그이지만 이번 배틀에선 화려함 대신 소박함을 주제로 택했다. 장식과 조리 과정을 최소화하고, 재료도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한정했다. 그의 주 전공은 양식이다. 하지만 이날 선보인 요리는 한식·양식·일식의 장르를 넘나들었다.

“장르에 얽매이면 발전이 없어요. 각 재료의 장점을 끌어내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게 요리사의 역할이죠.”

그는 이번 배틀에 나오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수시로 테이스팅을 받았어요. 감자 맛이 난다, 고구마 맛이 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차’ 싶었죠. 바나나 맛이 난다는 평을 들을 때까지 재료의 양을 조절하며 레시피를 수정했어요.”

그는 이번 배틀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메뉴로, 비록 심사에선 상대에게 패했지만 폰즈소스를 이용한 두부푸딩을 꼽았다.

“디저트에는 거의 쓰지 않는 두부와 폰즈로 푸딩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제겐 큰 의미가 있어요. 모든 재료는 모든 음식에 쓸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논리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됐거든요.”



아껴 먹던 추억을 불러냈다 정병운 셰프

바나나 파스타와 겉절이,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다 깜짝 작품 ‘바나나떡’, 포근한 엄마를 느끼다

‘향수(鄕愁)’. 정병운 셰프 팀 메뉴의 주제는 이랬다. 예전에 바나나는 귀하고 비싸서 특별한 날에만 먹던 과일. 그래서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면 아껴가며 먹던 추억의 먹거리다. 정 셰프는 그 푸근한 기억과 달콤한 바나나의 맛을 결합해 음식으로 표현해 냈다. 바나나 퓨레·카사타로 부드러움을 강조하고 바나나 모양의 떡을 만들어 가족이 함께 웃으며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개발했다. 접시 위에는 노랑·초록·분홍색의 소스로 봄의 색깔을 총출동시켰다.

이도은 기자

애피타이저│관자구이와 바나나 처트니 ④

해산물 중 바나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로 관자살을 찾았다. 노란색의 바나나 퓨레와 초록색의 아스파라거스 새순을 곁들여 봄의 활력을 표현하고자 했다. 퓨레는 바나나만 넣으면 노란색을 표현할 수 없어 망고를 가미했다.

주요 재료: 관자살·바나나·아스파라거스·화이트 와인·레몬주스·발사믹 식초·사과·계피·말린 망고·살구·파파야

만드는 과정

-관자구이: 와인·레몬 주스에 재운 관자를 센 불에서 구우며 소금·후추·오렌지즙을 뿌린다. 발사믹 식초에 꿀을 조금 넣고 반쯤 될 때까지 졸여 소스를 만들고, 망고와 바나나는 시럽에 끓인 뒤 믹서에 갈아 바나나 퓨레를 만든다.

-바나나 처트니: 말린 망고·파파야·살구·바나나를 다져 데친 뒤 다시 물을 조금 넣고 졸인다.

디스플레이: 발사믹 소스를 접시 중간에 얇게 바른 뒤 그 위에 바나나 퓨레를 깔고 관자살을 올린다. 맨 위에 아스파라거스를 얇게 저미고 꼬아 모양을 낸다. 접시 한쪽에 바나나 처트니를 놓고 계핏가루를 묻힌 사과를 장식한다.

메인│양갈비 구이와 소 안심구이 ⑤

바나나를 이용해 집에서도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바나나 가루와 견과류로 고기를 감싸 특유의 냄새를 없앤 것. 곁들이 채소가 아니라 채소를 듬뿍 넣은 바나나 케이크로 변화를 줬다.

주요 재료: 양갈비, 소 안심, 새송이 버섯, 양송이 버섯, 방울토마토, 바나나 케이크, 줄기콩, 빨간 양파, 빨간 피망

만드는 과정

-양갈비에 바나나 가루, 견과류, 마늘 등을 섞어 만든 크러스트를 입히고, 소 안심은 허브로 감싸 오븐에서 익힌다.

-바나나 케이크: 감자, 바나나 칩, 바나나 가루, 고구마, 호박, 감자를 잘게 썰어 틀 안에 넣고 생크림과 계란을 섞어 뿌린 뒤 오븐에 굽는다.

-레드 피망 소스: 빨간 양파는 볶고 적피망은 구워 껍질을 벗긴 뒤 화이트 와인과 바나나 리큐어를 넣고 끓인다.

-버터 타임 주스: 데미그라스 소스와 바나나 리큐어를 졸인 뒤 타임(허브)을 넣고 버터로 향을 내준다.

디스플레이: 양갈비에는 레드 피망 소스를, 안심에는 타임 향의 버터 소스를 곁들여 준다. 바나나 케이크도 한 조각 잘라 놓는데, 각각을 색이 다른 소스와 매치해 주는 것이 포인트다.

디저트│바나나 떡과 바나나 카사타 ⑥

단호박 찰떡 안에 바나나로 속을 채운 ‘바나나 떡’이 압권이었다. 찰떡을 멍키 바나나 모양으로 만들어 시각적인 즐거움을 줬다. 떡과 함께 부드러운 카사타와 바나나를 곁들이며, 바나나가 풍성한 동서양의 디저트를 한 접시에 담았다.

주요 재료: 바나나 떡(호박, 찹쌀가루, 바나나 반 개, 설탕, 깨, 꿀), 바나나 카사타 (계란 흰자, 생크림, 설탕, 바나나 퓨레)

만드는 과정

-바나나 떡: 호박을 찐 뒤 바나나 퓨레, 찹쌀가루 등을 넣어 반죽을 만들고 바나나·깨·소금·설탕을 볶고 꿀을 넣어 속을 준비한다.

-바나나 카사타: 계란 흰자에 설탕을 넣고 중탕으로 끓인 뒤 바나나 퓨레를 넣는다.

▶디스플레이: 바나나 떡 위에 설탕·버터를 졸인 소스를 발라 실제 바나나처럼 보이게 한다. 다른 쪽에는 바나나를 잘라 풍성하게 깔고 그 위에 카사타를 얹은 뒤 쿠키를 올린다



누가 이겼을까

냉정하다 싶게 몰표 판정이 이어졌다. 애피타이저·디저트 평가에서 양팀이 번갈아 4대0을 만들었다. 메인에서 이긴 이 셰프가 최종 승자가 됐다.

이날 일단 맛에 관한 한 평가할 바가 못됐다. 각각의 요리가 맛에선 최상급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날 주제인 바나나를 얼마나 잘 살렸느냐가 관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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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고 튀기고 얼리고 … 사흘간 수십 가지 메뉴 연습”

“순수 토종으로 내세울 경력도 없지만, 기회를 놓치긴 싫었어요.”

말은 겸손했지만 최고의 맛은 학벌이 아닌 실력에서 나온다고 믿는 그다. 스물 다섯에 처음 일류 요리사의 꿈을 품었고, 그 길로 내쳐 달려 지금은 특급 호텔 셰프가 됐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6년간 식당에서 일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논문 공모대회와 요리 경연에 참가해 여러 번 상을 탔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졸업하자마자 특급 호텔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배틀에 참가하기 위해, 그는 다른 두 명의 경쟁자와 총주방장 앞에서 면접을 치렀다. 즉석에서 주제를 주면 5분 안에 애피타이저-메인-디저트 메뉴를 말하는 방식이었다. 주어진 문제는 ‘농어’. 이 주제를 잘 풀어 가장 경력이 짧았던 그가 뽑혔다.

‘바나나’는 농어보다 더 까다로웠다. 색깔이 쉽게 변하고 단맛이 강해서다. 사흘간 수십 가지 메뉴를 만들어 봤다. 바나나를 갈고 튀기고 이것저것 해보다 결국 얼리거나 소스를 입히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틀엔 졌지만 그는 웃었다. 준비한 기간만큼은 행복한 고민을 맘껏 할 수 있어서란다. 그리고 바나나소를 넣은 ‘바나나떡’은 이날 심사단과 진행 스태프들을 모두 감동시킨 가장 창의적인 작품으로 꼽혔다.

장소협찬: 샘표식품 지미원

맛의 발견

바나나 떡 바나나를 떡의 소로 썼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 깨닫게 해준 ‘신발견’이었다. 이 소는 바나나를 으깨고 여기에 견과류와 대추를 잘게 다져 넣은 뒤 꿀을 약간 섞어주는 것으로 끝. 소가 너무 묽어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기술이 관건이다. 이 소는 기존의 떡에 들어가는 깨나 콩·팥으로 만든 소와는 전혀 다른 식감을 준다. 바나나의 달콤·상큼함에 새로운 질감까지 얹은 것이다. 이 질감이 호박찰떡의 맛과 묘하게 어우러진다.

바나나 누들 막상막하였던 승부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이상학 셰프가 메인으로 내놓은 ‘바나나 누들’이었다. 점성이 높고 손으로도 쉽게 물러지는 바나나의 특성을 반죽으로 이용한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으깬 바나나를 밀가루·계란과 반죽한 뒤 밀봉해 냉장고에 넣어두면 바나나의 맛과 향이 그대로 반죽에 스며든다. 누들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는 바나나의 특성상 연한 갈색을 띤다. 이를 그대로 ‘천연색소’로 활용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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