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정동영 변수 … 2006년 - 2009년 닮은꼴 재·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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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다. 20여 일 뒤엔 재·보선이 열린다. 그 사이 북한을 제재할 수단을 두고 국내외에서 대형 논쟁이 벌어진다. 올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거다. 북한이 5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29일 재·보선이 치러지니 말이다. 하지만 2006년 7월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그해 7월 6일 북한이 대포동 2호를 발사했다. 그로부터 20일 뒤 7·26 재·보선이 치러졌다. 노무현 정부 4년차 때였다.

◆‘미사일 보선?’=2006년 7월 여야의 리더십은 불안정했다. 열린우리당은 그해 5·31 지방선거에서 패하면서 대표가 바뀌었다. 정동영 당의장(대표 격)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물러났고 김근태 비상 체제가 들어섰다. 대통령과 당의 관계도 썩 좋지 않았다. 한 달 뒤 한나라당의 얼굴도 바뀌었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강재섭 대표가 선출됐다. 전대 후유증으로 한나라당 내부 또한 어수선했다.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는 이런 와중에 발생했다. 미사일 문제가 다른 이슈들을 압도했다. 이른바 ‘미사일 정국’이었다.

요새 모습도 닮은 구석이 있다. 여든 야든 리더십이 흔들리거나 도전받는 상황에서 로켓 발사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까. 2006년 재·보선에선 두 당 모두 패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한나라당은 네 곳 중 세 곳(서울 송파갑, 부천소사, 마산갑)에서 이겼지만 모두 ‘아성’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열린우리당은 단 한 곳도 건지지 못했다. 여야가 제대로 맞붙은 서울 성북을은 ‘제3자’에게 돌아갔다. ‘탄핵의 주역’인 민주당 조순형 후보였다. 당시 민주당은 2003년 열린우리당이 갈라져 나간 뒤 ‘구여권’으로 불리던 제3당이었다.

여론조사기관인 디오피니언 안부근 소장은 “미사일 발사 등 북한 변수는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안정심리를 자극, 여당에 다소 유리한 쪽으로 작동할 수 있다”며 “다만 2006년엔 정국 관리가 안 돼 여권이 효과를 못 봤다”고 분석했다. 실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미사일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북측 인사가 “북의 선군(先軍)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있다”며 민심을 자극한 일도 있었다.


◆정동영의 다른 처지=두 재·보선의 유사점은 또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의 출마 여부다. 하지만 상황은 다르다. 당시엔 노 대통령이 직접 정 전 장관에게 서울 성북을에서 출마해야 한다고 권했다. 정 전 장관이 “지방선거 결과를 책임지고 물러난 마당에 또 표를 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고 고사하자 당 지도부까지 설득에 나섰다. 급기야 정 전 장관이 7월 중순 독일로 떠나는 일도 벌어졌다. 불출마를 위한 ‘도피성 연수’였다.

이번엔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정 전 장관에게 공천을 줄 수 없다고 결정한 반면 정 전 장관은 출마 의사가 강하다. 3년 만에 처지가 역전된 셈이다.

고정애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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