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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유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드라마려니, 하면서도 그 속내가 궁금했다. 법이 소용없는 게 이 드라마 속 세상이라서 그랬을까. 혹 가해자가 생판 모르는 남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 한때 친구라고 여겼던 학교 후배라서, 그 후배가 이런 짓을 저지르도록 사주한 것이 다름 아닌 남자친구의 어머니라서, 이들에게 법을 들이대는 게 망설여졌던 건 아닐까. 어찌됐건 가까운 이들에게서 이런 몹쓸 일을 당하고도 금잔디는 착하고 발랄한 천성을 잃지 않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걱정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를 깨달은 건 지난주 영화 ‘똥파리’의 시사회를 보면서였다. 신인 양익준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는 이미 전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여럿 받은 화제작이다. 듣던 대로 첫 장면부터 욕설과 폭력이 넘친다. 주목할 것은 그 폭력의 기원이다. 학교 후배나 남자친구의 어머니보다 훨씬 가까운, 바로 가족의 폭력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깡패와 여고생이다. 일견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듯 보이지만, 가정폭력 때문에 진저리 치는 삶을 살아왔거나 살아가는 점이 닮았다.

주변에 이를 말리는 손길 하나 없는 것도 닮았다. 여고생은 제 정신이 아닌 아버지의 발작 같은 폭력을 근근이 버티며 산다. 깡패 역시 그랬다. 어린 시절 그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법의 심판은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 뒤에야 벌어졌다. 그런 남자가 성인이 된 지금, 폭력으로 먹고사는 용역 깡패일을 한다는 설정이 아이러니하다. ‘똥파리’는 폭력의 질긴 상처를 살 떨리게 보여준다.

이들이 왜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지 영화에 물을 일은 아니다. 가정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오래도록 ‘집안 일’로 치부돼 왔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시행된 것은 불과 11년 전의 일이다. 물론 법이 전부는 아니다. ‘똥파리’에서 그 아버지는 법적인 죗값을 치렀건만, 어린 소년의 가슴에 남은 상처는 성인이 된 지금도 아물지 않은 채로 있다.

‘똥파리’는 자기치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은 서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 대신, 막연하게 의지하는 친구가 되어간다. 그러고 보니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에게도 ‘소방수’라고 불린 친구가 있었다. 급할 때마다 마음의 불을 꺼주는 역할을 비유한 말이다. ‘똥파리’의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소방수가 되어 준다. 사실 친구에게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가정폭력은 때로는 경찰은 물론이고, 마음의 소방수가 될 사회적 제도가 출동해야 하는 사건이다.

이후남 중앙SUNDAY 문화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