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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찾은 재독작가 노은님 교수…'독일'을 이긴 사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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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예술은 가난에서 꽃핀다' 는게 옛말이 된 요즘 풍토에서 재독작가 노은님 (51) 씨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오직 실력 하나만으로 가난과 외로움으로 기억되는 불우한 젊은 시절을 이겨낸 원숙한 작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미끈하지 않은 (?) 얼굴에서 진짜 작가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미 알려진 대로 노씨는 70년 순전히 돈 때문에 독일로 건너가 간호보조원에서 90년 국립 함부르크조형미술대학 교수라는 극적인 신분상승을 이룬 현대판 신데렐라의 한 사람이다.

유리구두 한짝이 아닌 붓 하나로. 호들갑스런 평가가 결코 아니다.

최근 독일 함부르크의 유서깊은 요하네스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을 쟁쟁한 독일작가들을 제치고 그가 '따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내년 3월 건립 1백25주년을 맞는 이 교회는 3년전 방화로 불탄 내부 장식을 위해 유명 독일작가들을 상대로 지명공모를 벌인 끝에 노씨를 선정했다.

비(非) 기독교 신자, 게다가 외국인인 노씨에게 배타적인 독일인들이 교회 내부를 맡기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동양의 명상세계, 특히 샤머니즘과 도교적인 색채가 묻어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작가에게 기독교 문화의 상징인 교회 내부를 맡기다니…. 종교 구분이 엄격한 우리에게는 일견 비상식적으로까지 느껴지지만 현재 60%가 진척된 작업에 대한 현지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다.

노씨는 "신자가 아니라서 성경 내용은 잘 모르지만 하나님의 집이 아닌 누구에게나 편안한 집을 만들자는 생각이 받아들여진 것 같다" 며 "원초적인 면에서 모든 종교는 결국 다 통하는 것 아니냐" 고 반문했다.

이처럼 동양과 서양이 아주 자연스럽고 유머러스하게 만나고 있는 그의 작품은 이미 종교까지도 초월했다.

노씨는 이 프로젝트를 잠시 접어두고 서울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17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개인전과 27년의 독일생활을 담담하게 풀어낸 자전 에세이집 '내 고향은 예술이다 (동연刊)' 출간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독일 공영 제1TV인 ARD 제작팀이 함께 와 노씨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 오는 24일 30분간 유럽내 독일어권 나라에 방영하는데서도 그의 위치를 가늠케 해준다.

"큰 고생은 다 정리가 됐다" 는 소감처럼 전시장에서 만난 노씨는 어느 때보다 편안한 얼굴이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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