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래예측서' 출간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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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일본축구대표팀이 천신만고 끝에 프랑스월드컵 본선티켓을 따냈다는 모처럼의 밝은 소식을 빼고나면 요즘 일본사회는 대체로 우울한 분위기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에다 관료부패. 여고생매춘. 총회꾼사건 같은 부정적 이미지의 단어들이 연일 매스컴을 채우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내로라' 하는 일본의 간판급 평론가들의 미래예측서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작가는 통산성 관료에서 작가로 변신한 사카이야 다이치 (堺屋太一).실무경험이 풍부한 그는 최근 예리한 분석력으로 '다음은 이렇게 된다' (고단샤刊) '내일을 읽는다' (아사히신문사刊) 등 가까운 미래를 예측한 2권의 역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80년에 지금의 사회중추세대인 40대후반을 '단카이 (團塊) 세대 (전후 부흥기를 지탱해온 베이비붐세대)' 라 지칭했던 그는 21세기를 앞두고 '단카이세대' 가 고령화되는 시대를 걱정했다.

작가는 현사회의 추세를 '다음은…' 에서 '과도한 자본주의화' '출산율감소화' '보더리스 (Borderless) 화' '소프트웨어화' 로 꼽고 이런 현상이 21세기 일본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대로 방치하면 일본은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경고하고 '현실적 방안' 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엉거주춤한 개혁이 아니라 일하는 행태에서 삶의 가치관까지 송두리째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8월말 출간된 이 책은 경제경영서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다. '내일을…' 은 관료. 행정개혁. 경제. 지역사회. 세계정세. 삶 등 폭넓은 주제를 다뤘다. 사카이야는 이 책에서 "하나의 체제가 사라지고 새 체제가 정비될 때까지 대략 1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며 "냉전이 끝나고 10년째가 되는 2000년까지 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지 여부에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다" 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관료체제의 타파를 주장하면서 "유연성이 결여된 관료들은 꼭 과거의 일본군과 같다" 고 꼬집었다.

평론가이자 컨설턴트로 지난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오마에 겐이치 (大前硏一) 는 '시대의 교대, 세대의 교대' (PHP연구소 刊)에서 젊은이들을 향해 "이대로 가면 너희들의 미래는 어둡다" 고 일갈하며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본인의 탈 (脫) 일본화' 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람직한 미래의 삶에 대해서는 지금까지의 획일화된 형태와는 다른, 자유롭게 사고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생을 제시했다.

한편 시간당 강연료가 1백만엔 (약 7백만원)에 달하는 인기평론가 다케무라 겐이치 (竹村健一) 는 일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을 시리즈로 내고 있다.

최근 출간한 3권 '미래로 가는 길을 만든다' (태양기획출판刊) 는 일본의 교통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며 "환태평양시대에 맞는 교통인프라의 정비가 시급하다" 고 강조했다.

일본장기신용은행 출신의 경제평론가 구사카 미킨도 (日下公人)가 쓴 '앞으로의 10년' (PHP연구소刊) 은 벤처기업을 동경하는 젊은 독자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미래의 유망산업으로 소프트웨어와 문화사업을 내세웠으며, 일본경제에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벤처기업의 육성을 들었다.

이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관료체제' 를 개혁의 대상으로 내세운 게 눈길을 끈다.

메이지 (明治) 유신 (1868년) 이후 1백년이상 일본사회를 이끌어 온 관료체제는 이제 획일화.규제.비효율성의 대명사가 돼버렸다는 지적. 이미 민간사회.기업.교육계 등 사회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관료적 체질을 바꾸지 않고서는 일본의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게 공통된 메시지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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