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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떠나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8호 15면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 잠시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에서 멀어지기 위해 어딘가로 떠나 버리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떠날 형편이 못 되면 모든 연락을 끊고 ‘잠수’라도 타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연애·입시·사업 등에 실패한 사람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지친 정치인·연예인·운동선수들이 홀연 외국으로 떠나 버리는 심정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 같은 이들이야 치열하게 역사를 살아내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혹여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주어진 책임에서 도피하자는 것이라면 ‘떠남’의 목적이 의심스러울 수 있다. 부모님을 떠나 먼 곳에서 오래 머물지 말라고 말한 공자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 가족이 있는 내 나라를 떠나는 것은 일종의 배신이자 방기인 듯 보는 시각도 있다(실제로는 물론 부모를 잃은 후지만, 공자 자신도 천하를 주유하며 세상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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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으로 보자면 ‘떠남’은 낯선 세계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나’를 만들고 경험한다는 면에서 인생의 큰 도약일 수 있다. 고향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길을 떠나는 행동은 자신의 미숙함과 이별하고 진정한 독립적 인간이 되는 일종의 영웅적 여정(heroic journey)이다. 익숙한 편안함을 박차고 낯설고 험한 곳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는 어려운 과정을 견뎌내며 인격의 성숙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광야에서 사탄과 마주하며 대중과 함께할 날을 준비했던 예수나 오랜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체험이 그중에서도 아마 가장 높은 수준의 변모일 것이다.

그러나 타향에서 자신에게 약이 되는 고생은 거부한 채 부모나 남이 두둑하게 채워 준 돈을 원 없이 쓰며 한가한 여유나 즐기고 오는 ‘떠남’이라면 퇴행적 의존의 연장에 불과할 뿐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가고, 망둥이 따라 뛰는 꼴뚜기처럼 생각 없이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이라면 당연히 별다른 성과도, 배울 바도 없을 것이다. 비싼 돈만 잔뜩 쓰고 빈손으로 올 바에야 차라리 아니 떠남만 못하다. 영어라도 배우라며 생각 없이 아이들을 무리하게 유학 보냈던 부모들이 결과가 오히려 너무 나빠 정신과 의사들과 상담하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

한동안 정치인이나 경제인도 문제가 생기면 일본이란 뒷마당에 머물면서 ‘도쿄 구상’이니 ‘교토 구상’이니 하는 말들을 흘리곤 했는데, 요즘엔 미국이나 유럽이 그 자리를 대신해 주는 것 같다. 고향을 떠나갔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돌아오는 사람들을 미국에서는 50년대 인기 시리즈물의 주인공 이름을 따 ‘매버릭(Maverick)’이라 표현한다. 우리나라의 매버릭은 과연 어떻게 변모해 돌아오고들 있을까. 떠날 때나 돌아올 때나 차이 없이 여전히 주위에 손 벌리는 애어른이나 주변에 분란과 소음만 일으키는 이도 있고,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해 많은 사람에게 영감과 희망을 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나라 유학 길에 나선 원효가 모르고 해골에 든 물을 마신 다음 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것[一切唯心造]’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는 일화와는 영 다르게, 길은 떠났으되 여전히 의존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굳이 요란스럽게 떠났다 돌아올 필요도 없다. 문제는 자유로운 마음이지 내가 자리한 공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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