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사건 파문] 盧대통령 문책인사 입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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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명 감사반장(왼쪽에서 두번째) 등 감사원의 외교통상부 감사관들이 김선일씨 피살 사건과 관련,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 외교부 청사에서 감사를 벌이고 있다. [김태성 기자]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직접 나서 김선일씨 피살 사건에 따른 개각과 문책 인사 여부를 정리했다.

감사원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이를 토대로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는 책임을 묻고 책임이 없는 사람에게는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고조된 계기가 된 AP통신의 한국인 피랍 확인전화건에 대해서조차 과오를 전제로 조사하지 말라고 했다. '공정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엄격한 조사'를 하라는 수식어를 썼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조차 '외교부 장관.국가정보원장 경질론'이 나오는 마당에 "확실한 문책의 근거가 없는 분위기 쇄신용 인사는 하지 않는다"는 지론을 고수하는 모양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고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박정규 민정수석은 "노 대통령은 확실한 근거 없이 (여론이) 내보내라고 하면 오히려 내보내지 않는 스타일에 가깝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노 대통령은 "어려운 때일수록 냉정하고 사려깊게 판단하고 책임 있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또 "구체적인 사실과 현실적인 상황을 토대로 판단하고 책임 있게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맥락에서 노 대통령은 몇가지 구체적 사실관계를 거론했다. AP통신 측이 외교부에 한국인 피랍 문의 전화를 했다는 대목에서다. 노 대통령은 AP 기자가 당시 이 정보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 외교부 측에 물어봤는지를 조사해 달라고 했다. AP통신이 통화 사실을 먼저 발표했을 때 관련 사항을 외교부가 즉각 조사해 발표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정부의 (명백한 공개) 원칙과도 맞지 않고 적절치 않았다"며 명확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AP통신과 외교부의 잘잘못을 편견없이 따져보라는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당부였다.

정부의 정보체계 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관련 기관들의 현지 정보 활동과 교민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뤄졌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특히 "외교부의 문화나 타성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은 이번 사건과 별개로 대책을 세워나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장관 한두명의 경질에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외교부 등의 '시스템 개혁'의 전기로 삼겠다는 언급이라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당선자 시절부터 노 대통령은 외교부 개혁에 강한 의지가 있었다. 인수위 시절 받은 외교부에 대한 보고는 적잖게 부정적이었다. '순혈주의, 특권의식이 강하고 특정 학맥, 특정 공관 출신으로 뭉쳐 경쟁력 배양이 어려운 조직'이라는 게 현재 여당 의원인 핵심 참모가 전한 당시의 보고였다. 아랍권을 순방한 국방부 장관이 "무기 구매 수요가 엄청나게 많더라"고 했으나 우리 외교관들은 관성대로 석유 외교에만 매달려 왔다는 보고도 있었다. 비대한 상층조직도 문제다.

그래서 농업외교 수요가 많은 주아르헨티나 대사에 최양부 전 농수산수석을 임명하는 등 몇가지 개혁 조치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본질적 변화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는 게 청와대의 진단이었다.

청와대의 한 핵심 참모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노 대통령은 장관 경질 여부와 무관하게 우리 외교의 경쟁력 배양을 위한 대수술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최훈 기자<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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