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꿈나무] ‘상처’로 상처 감싸준 우리 선생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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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말더듬이 선생님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이수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61쪽, 1만1000원

학교를 끔찍하리만큼 싫어하는 여덟 아이들이 말더듬이 선생님 무라마치와 만들어가는 여덟 개의 따뜻한 에피소드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늘 외롭다. 하고픈 말이 마음 속을 맴돌아도 말문이 터지지 않아 꾹꾹 눌러 담고 살아간다. 개구리를 죽이며 억눌린 화를 푸는 난폭한 아이, 하루 종일 ‘햄스터 대왕마마’하고만 대화하는 폐쇄적인 아이도 있다. 어른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왜 속상할 때마다 입을 다무는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지.

“나 나, 나는 무 무, 무라마, 마치에요”

어느 날 교실 문을 열었더니 처음 보는 국어선생님이 와있다. 말을 저렇게 심하게 더듬는데 도대체 뭘 가르치겠다는 걸까. 머리가 큰 중학생들이 선생님 말투를 따라 하고 비꼬며 배꼽을 잡고 쓰러진다. 어딘가 모자란 것 같기도 하고 좀 느린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가 일단 말을 꺼냈다 하면 모조리 ‘엑기스’란다. “정말로 주 주 주, 중, 중요한 것만 이야기할 테니 자 자, 잘, 부탁해.”

무라마치 선생님의 특기는 ‘곁에 있어주는 것’이다. 으슥한 체육 창고나 미술실에 홀로 주저앉아 새빨개진 얼굴, 터질 듯이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있노라면 어떻게 알았는지 적시에 나타난다. “많이 힘들었지? 늦지 않아서 다행이야.” 더듬는 말들이 리듬을 타고 귓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어른 식’이 아닌 ‘우리 식’이다. 어쩐지 마음이 잘 통한다.

작가는 분명 사춘기 심리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아니, 처음부터 어른인 사람은 없을 테니 어릴 적 감수성을 ‘날 것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상상 이상으로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소년소녀들의 마음이 안쓰럽다. 불끈 용기를 내 다시 교실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의 다짐을 읽다 보면 코 끝이 찡해진다. 매사에 불평불만뿐인 어른들보다 훨씬 더 씩씩하고 믿음직스럽다.

유난히 학교 사건사고가 잦은 요즘, 학생들은 남몰래 ‘진짜 무라마치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설정 상 임시직이다 보니 한 아이와 친해지기 무섭게 이별을 준비하는 게 안타깝다. 선생님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2권이 없는 게 아쉽다. 

홍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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