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할랄(halal)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미 국무부 법률고문에 내정된 한국계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학장의 취임에 보수파의 반발이 있었다고 뉴욕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이슬람 율법에 대한 고 학장의 발언에서 꼬투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은 일상생활에서 투자-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규정해 놓았다. 그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자 중 하나인 초코파이를 먹어선 안 된다는 것도 있다. 이유는 초코파이의 젤라틴 성분 때문. 끈적끈적한 질감을 내는 제과용 젤라틴은 돼지 가죽에서 추출한다. 무슬림에겐 최대의 금기인 돼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런 성분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각국 이슬람 교단에서는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식품의 목록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알려준다. 이를 할랄 푸드(halal food)라고 부른다. 전 세계의 공인 할랄 푸드 시장 규모는 580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이슬람 교단에서도 지난달부터 ‘먹어도 좋은 한국 과자’의 목록을 공지하고 있다.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육류의 경우 돼지고기, 피, 맞아 죽은 짐승의 고기 등은 먹어선 안 된다. 허용된 고기라 해도 율법 규정에 따라 도살된 것이어야 할랄 푸드로 인정될 수 있다.

왜 하필 돼지가 금기일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척박한 사막의 환경에 이유를 돌린다. 유목민들에게 최고의 가축인 양이 풀만 있으면 자라는 데 비해 돼지는 사람과 양곡을 나눠 먹어야 하고, 젖이나 털 등 부가 자원도 얻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사치품인 돼지를 키우느라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도가 금기로 변한 것이란 설명이다.

결국 모든 금기의 이면에는 그 사회 특유의 필연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금기의 무시는 때로 유혈사태로 이어지곤 한다. 1857년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의 반란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금기를 경시했던 영국 통치세력의 오만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슬람 세력에 대한 미국 보수파의 경계야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의 거부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할랄의 이해는 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 대한 아랍권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도 지난달 말 무슬림 모델을 기용한 한국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할랄 푸드 제공 식당을 안내하는 등 아랍권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기회에 다른 경로로 젤라틴을 추출한 ‘할랄 초코파이’를 만드는 건 어떨까.

송원섭 JES 엔터테인먼트 팀장

* 초코파이를 제조하는 오리온제과 측은 "국내에서 시판되는 초코파이에는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이 사용되지만, 중동 지역 및 이슬람 국가에 수출되는 초코파이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소 성분의 젤라틴을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오해를 유발시킨 점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