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자금난 위험수위…긴급 해외차입 추진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외화자금난이 위험수위에 접근하면서 정부차원의 긴급 해외차입이 불가피한 상황을 맞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일부 외국언론과 외국 금융전문가들이 제기하는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설이 나올 때마다 '경제의 기초여건이 건실함' 을 들어 그 필요성을 일축해 왔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상황은 훨씬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은행들마다 "금리수준이나 차입조건따위를 따질 겨를도 없다" 고 금융기관들마다 하소연이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한밤이 되도록 외화빚을 못갚아 외환당국이 막아주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하루짜리 외화자금을 빌리지 못해 런던시장과 뉴욕시장까지 나가 달러를 구하는 바람에 차입금리를 천정부지로 올려놓았으나 최근에는 이마저 어렵게 됐다.

현재로선 일부 국책은행과 시중은행들도 금리 고하간에 자력으로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올 수 없는 실정이다.

국내금융불안이 장기화하고 우리나라의 국제신용도가 떨어지면서 국내금융기관들은 외화기업어음 (CP) 의 만기 연장을 거절당하는가 하면 속수무책으로 외화차입 한도가 줄어들고 있다.

외환부족에 시달리는 외국환은행들은 기한부환어음 (유전스) 과 인수도조건부환어음 (DA) 취급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일찌감치 해외차입길이 막힌 종금사들이 외환당국의 긴급수혈로 연명한지는 벌써 두달이 넘었고, 이제는 시중은행들마저 당국에 손을 벌리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은 10.5%나 되는 금리를 주고 긴급한 상황에나 요청하는 초과인출자금 (OD라인) 을 얻어다 쓰는 사례마저 나타났다.

외환당국이 외환보유고를 털어 메워주는 것도 언제 중단될지 모를 상황이다.

해외에서 새로 들어오는 외화가 없는 처지에, 빤한 외환보유고를 곶감 빼먹듯 꺼내쓰는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환율급등을 막는다고 외환당국이 달러를 내다파는 바람에 외환보유고 자체가 위태롭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금융계에서 공공연히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일부 외국언론이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외환보유고 수치 자체를 못믿겠다고 나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데는 정부의 정책 실기도 큰 몫을 했다.

막대한 외환보유고만 썼을뿐 환율을 잡기는커녕 오히려 더 끌어올리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정부차원의 해외차입에 대해서도 "문제없다" 는 말만 연발했지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외환위기가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데도 재경원과 한은은 한은법과 통합감독기구법을 놓고 감정대립을 벌이는 가운데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데만 열중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당면한 외환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정부가 나서서 외화를 빌려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현재 IMF구제금융과 한은의 국제결제은행 (BIS) 차입등이 거론되고 있으나 재경원과 한은은 아직 결론을 못내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도 환율은 다시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