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돋보기] 지적 장애인에게 휴대폰 4대 한꺼번에 판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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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모(61·여)씨는 요양 보호사다. 서씨는 천안시 원성동에 사는 강모(68)씨 집에서 간병인 역할을 하고 있다.

강씨는 신체 장애 2급의 장애인이다. 강씨의 부인 황모(65)씨와 딸, 아들 2명도 지적 장애 1급 장애인이다. 집안 식구 모두가 장애인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서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강씨의 맏아들(39)이 휴대전화 4개를 가입했다며 강씨 집으로 청구서가 날아왔다.

휴대전화 사용법도 잘 모르는 정신지체 장애인이, 그것도 4개씩 한 판매점에서 휴대전화를 가입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데…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휴대전화를 4대나 팔 수 있었을까.“ 서씨는 판매점을 찾아가 따졌지만 소용 없었다. “왜, 남의 일에 참견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

서씨는 하는 수 없이 이 같은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천안동남경찰서는 강씨 아들이 휴대전화를 가입하게된 경위와 실제 사용자를 밝히기 위해 판매점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장애인을 상대로 한 크고 작은 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지적 장애인은 지각 능력이 떨어져 범죄에 쉽게 노출된다.

아산경찰서는 최근 지적 장애 2급인 A씨(24.·여)를 성폭행한 박모씨 등 3명을 붙잡아 구속했다. 구속된 박씨 등은 모두 A씨와 한 동네 사는 나이 지긋한 남자들이었다.

장애인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천안·아산지역에서만 장애인 성폭력과 관련한 상담 건수가 765 건에 달한다. 실제 피해규모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상담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한 범죄행위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알려진다 해도 경찰 수사가 순조롭지 않다. 피해자의 진술이 가장 기초적인 단서가 되지만 지적 장애인으로부터 구체적인 피해 진술을 듣는다는 것이 불가능하기하다.

천안성폭력상담소 박두순 소장은 “장애유형 중 지적 장애인의 피해 비율이 매우 높다. 상황 예측이나 항거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방교육이나 상담을 통해 스스로 방어를 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럴만한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현실”이라고 말했다.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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