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 유적론의 반론 근거…聖자는 요히려 불교용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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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현지주민들의 주장에 따라 기자가 조사한 결과, 왕인유적론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성천의 성 (聖) 자는 유학자 전용물인가 : 성 (聖) 자는 불교와 인연이 더 깊다.

영광 불갑사 인근의 법성포 (法聖浦) , 충남보령의 성주사 (聖住寺) 등은 불교와 관련된 지명 내지 절이름이다.

이밖에 국내 사찰에 성자가 들어간 절은 무수히 많다.

▶왕인석상 : 문산재는 원래 문수암이란 사찰이 있던 곳. 주민들은 문수암의 석상을 문수보살이라고 믿어왔다.

이곳에 유학자인 왕인을 받들어 석상을 세웠다는 단정은 한국유학사 어디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석상은 '김제출토 동판형14존열좌상' (국립박물관 소장) 및 운주사 석불과 같은 계열의 불상이다.

▶유교가 국시였던 조선시대 문헌에 왜 왕인이 없는가 : 지역 유림들이 성인 (聖人) 으로 받들만큼 위대한 인물이었다면 최소한 도선국사의 전설이 기록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이나 19세기에 간행된 '여지도서' (국편 영인본) 등에 기록돼야 했다.

▶구림.국사암.고택 (古宅) 터 명문.백암에 대한 의식적 회피 : 도선 관련 지명과 유적에 대한 적극적 해명이 없다.

왕인이란 인물이 일본에 갔다면 이는 백제왕실에서 파견한 학자들 중의 한명이라는 것이 정사의 추론이다.

흰덕바위 (백암) 전설과 관련, 끌려갔다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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