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늦깍이 문학열정 주부들 더뜨겁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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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90년대 신춘문예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30~40대 주부들의 '문학바람' 이다.

이들은 소설부문의 경우 거의 모든 신춘문예 당선을 휩쓸만큼 문단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부분 일간지등에서 운영하는 문학센터에서 3~4년씩 글을 갈아 소녀시절 문학에 대해 품었던 꽃다운 열정을 뒤늦게나마 현실로 일궈내고 있는 경우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3개월코스로 운영되는 중앙문화센터의 시.소설.수필등 창작교실에도 2백여명이 넘는 '문학장년' 들이 등단을 꿈꾸고 있다.

은행원.교사.의사.퇴직공무원등 나이.성별.학력이 다양한 수강생들이 있지만 역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주부들. 강의가 시작되면 이들은 이내 18살로 돌아가 버린다.

글쓰기를 읊는 강사의 입술에 연인을 바라보듯 뜨거운 시선이 쏟아진다.

구르는 낙엽에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을 글로 옮기지 못해 또 가슴아파 한다.

일주일간 한올 한올 엮은 습작노트를 강사에게 보이고는 무슨 말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해 한다.

인생의 가을을 생각해야 할 나이지만 신춘문예와 함께 돌아올 봄을 꿈꾸는 것이다.

중앙문화센터에서 17년째 소설창작을 강의하고 있는 소설가 이호철씨는 "젊은 사람들과 달리 수강생들이 생활 속에서 쌓아온 만만치 않은 체험의 부피가 작품 속에서 느껴진다" 며 이들의 장점을 지적했다.

허구일 수 밖에 없는 소설이지만 살아온 날들이 문학에 대한 열정에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삶쓰기' 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이씨에게 소설을 배워 신춘문예등 소정의 절차를 거쳐 문단에 진출한 작가도 스무명 가까이 된다.

서너번 혹은 대여섯번씩 연달아 강의를 듣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울소나무' 라는 문학동아리가 탄생하기도 했다.

'서울소나무' 동인들은 지금까지 여덟권의 작품집을 내놓았고 지난해에는 '전국동인지 콘테스트' 에서 우수상을 타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물론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등단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후속작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신춘문예출신이라는 부담감이 창작의 고통과 함께 이중고가 되어 오히려 작품활동을 펴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작가에게든 공통적이겠지만 문학 이외의 분야에 대한 지적 축적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주부작가들에게 더욱 두드러진다고 한다.

지난 88년부터 10년째 문학센터에 다니고 있는 강태화씨는 그래서 "젊은 사람들 책 한권 읽을 때 열권을 읽는다" 고 했다.

강씨는 은행에 다니는 남편과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둔 44세의 평범한 가정주부. 고교시절부터 빠져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삭이지 못해 글쓰기를 시작했고 93년 지방일간지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어 작가에의 꿈을 이루었다.

강씨는 주부로써 글쓰기를 병행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삶자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돼 이제는 삶을 지탱하는 끈이 되주고 있다" 고 한다.

그렇게 40대 넘어서도 아직도 식지않은 꿈, 그 문학혼을 지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양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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