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합병은 멋대로 선포한것"…순종 유서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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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임종 직후 한일합병 조약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뤄진 것이므로 폐기돼야 한다고 밝힌 유조 (遺詔.일종의 유서)가 한 교민신문에 게재됐던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대 이태진 (李泰鎭.국사학과) 교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된 교민신문 '신한민보 (新韓民報)' 의 1926년 7월8일자를 공개하며 순종이 궁내부대신 조정구 (趙鼎九)에게 이같은 뜻을 밝힌 유조를 받아적게 했다고 13일 주장했다.

신한민보는 도산 (島山) 안창호 (安昌浩) 선생등이 발행했던 민족지다.

李교수가 공개한 유조에서 순종은 "지난날 (1910년) 의 병합 인준은 강린 (强隣.일본) 이 역신 (逆臣) 의 무리 (이완용 등을 지칭) 와 더불어 제멋대로 만들어 제멋대로 선포한 것" 이라고 밝히고 "구차하게 살며 죽지 않은지가 지금에 17년이라, 종사 (宗社) 의 죄인이 되고 2천만 생민 (生民) 의 죄인이 되었으니, 한 목숨이 꺼지지 않는 한 잠시도 이를 잊을 수 없는지라…. 지금 병이 침중하니 일언 (一言) 을 하지 않고 죽으면 짐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 고 밝히고 있다.

순종은 또 "내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사랑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내가 한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게 하면 이전의 이른바 병합 인준과 나라를 양도하는 조칙은 저절로 파기에 돌아가고 말 것이리라" 며 "노력하여 광복하라" 고 촉구했다.

李교수는 유조의 발견으로 그동안 병합조약의 대한제국측 서명이 국새가 아닌 어새 (勅命之寶.일반행정결재용) 로 이뤄진데다 반드시 있어야 할 황제의 이름 (순종의 경우 척) 이 빠져 사실상 황제의 동의없이 강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는 그간의 주장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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