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전통문화 가미된 상품으로 국제경쟁력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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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가올 21세기의 화두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과학과 문화의 융합이 신문명을 창출해 낼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과거 에스키모인들은 자연환경에 가장 적합한 이글루를 만들어 생활해 왔으나 현실에 안주하면서 전통문화에 새로운 기술을 융합시키지 못해 세계문명에 기여하기는커녕 정체된 생활에 머무르고 있다.

문화는 있으나 기술은 발전시키지 못한 사례다. 이와 대조적으로 선진국에서는 기술과 문화의 융합을 통해 성공한 경우가 많다.

일본은 기술에 축소지향적인 문화적 특성을 가미해 일본 특유의 소형.에너지 절약형 상품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고 독일은 독일 병정이라는 이미지처럼 정확하고 튼튼하고 규격화된 기계류 상품으로 확고한 자리를 굳혔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한국의 문화와 기술을 융합해 대표할만한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가.

미국시장에서 한국상품 점유율이 88년 4.6%에서 97년 6월 현재 2.6%로 계속 감소하고, 특히 우리나라 기술집약형 수출 주력 상품인 가전제품의 경우 대미수출이 평균 26.7%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품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존 문화와 융합을 통한 한국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창출해 낼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우리 생활 주변에 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음양의 조화' 를 통해 '은근' 하며 '자연친화적' 이고 '보일 듯 말 듯' 하지만 갈수록 '정감이 있는 미' 를 추구해 왔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문화적 특성을 잘 활용하면 세계무대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훌륭하게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천연염색.한지.옻칠 등 조금만 창의성을 가미하면 우리만의 기술로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런 기술은 현대과학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옛 문헌 및 잔존 기술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예컨대 옻칠은 이미 세계 최고급 도료로서 벤츠자동차 배기통의 산화방지제로 쓰이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연친화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어 환경문제 해결에도 큰 몫을 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가능성이 있는 기술을 활용해 현대과학기술로 발전시키는 데는 무엇보다도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이 접목된 과학문화 마인드 확산이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문화의 접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 새싹들이 학교과학교육뿐만 아니라 과학관에 많이 와서 보고, 또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과학관은 전통문화와 과학기술의 융합을 볼 수 있는 보고다.

어린이들이 탐구에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21세기에는 우리의 기술로 세계과학기술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유희열 <국립중앙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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