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고노 요헤이 일본 중의원 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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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외상을 지낸 고노 요헤이 중의원 의장은 일본 내 개헌논의에 대한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고노 요헤이(河野洋平.67) 일본 중의원 의장이 자민당 등 일본 정계가 활발히 논의하고 있는 헌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고 자유롭지 못한 점이 있다면 헌법을 바꿔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노 의장은 지난 17일 의장 공관에서 한국 언론과 처음 인터뷰를 했다.

-일본에서 헌법 개정 움직임이 활발하다.

"개헌을 하려면 우선 현행 헌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개헌하자는 말이 앞서 있고 무엇을 위해 어디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는 확실치 않다. 또 최초의 개헌론자들은 '현행 헌법이 (태평양전쟁 패전 후) 미국의 강요에 따라 만들어졌으므로 고쳐야 한다고 했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즉시 대응하기 위해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9조를 바꾸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다. 다만 헌법 9조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는 있다. 사실 자위대는 훌륭한 군대다. 이 때문에 '자위를 위한 군대 보유는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틀린 의견은 아니다. 그렇지만 헌법이 엄격하게 제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위대가 (규모.해외활동 면에서) 이 정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위대를 지금과 같은 정도로 묶어두고 유엔 활동, 인도적 지원 등 두가지 조건에 한해 자위대의 해외 파견을 허용하는 게 좋다."

-일본이 미사일방위(MD)시스템을 도입키로 하는 등 군비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 미군 재배치에서 한국보다 일본을 중시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있다.

"미사일 방위는 완전한 방위형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은 그것을 뛰어넘는 공격 시스템을 만들 것이므로 결국 군비확산을 불러온다. 군비확산은 경제에 부담을 준다. 해외 미군 재편성과 주일미군 강화 문제는 미국의 전체 구도에서 계속 논의해야 하지만, 미국도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국.미국.일본이 힘보다는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더욱 노력해야 한다. 외교는 단순한 대화가 아니다. 외교 교섭에는 딜(거래)이 매우 중요하다."

-북핵 해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압력보다는 대화로 푸는 게 좋다. 쉽지는 않지만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안전보장을 하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게 최상책이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 못지않게 한.미.일 간의 의견 일치, 미국 국내의 의견 통일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 단계에선 비교적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로 중.일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다.

"일본에 아시아 외교는 가장 중요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다른 경제.문화환경 속에서도 하나로 뭉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노력이 좋은 결실을 보도록 동북아 국가 지도자들이 더욱 힘을 합쳐 안정된 정치와 발전하는 경제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두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다짐을 위해 참배한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평화.안정에 장애가 된다면 참배를 불쾌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생각해야 한다."

-지난 4월 한국의 총선 결과 의원의 세대교체가 대폭 이뤄졌다. 김종필 전 의원 등 한.일 의원 외교를 이끌던 정치인도 대부분 낙선, 한.일 의원 외교가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지금까지의 한.일 의원 외교는 일본어를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열렸다. 일본에서도 젊은 의원들이 늘고 있는 만큼 양국 젊은 의원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외교가 시작될 것이다. 다만 (일본의) 젊은 의원들은 그다지 역사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역사를 무시.경시하면 마지막에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한국 등 아시아 역사를 배워야 한다. 또 한국의 일부 젊은 정치인이 미국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것도 걱정이다. 몇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전 정치인과는 시각이 다르고 솔직하면서도 좀 심한 발언을 한다고 느낀 적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젊은 정치인들은 미국에 대해 친근감을 갖고 있다. 양국 젊은 정치인들이 세계에 대해 넓은 시각을 갖고, 미국.유럽.중국.일본.한국의 역할과 입장을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일 간 민간 교류가 크게 늘었지만, 한국에선 중국 붐도 거세게 불고 있다.

"한.일 교류는 정치인.경제인.학자뿐 아니라 '풀뿌리 교류'로 확산되고 있다. 매우 좋은 경향이다. 앞으로 일본 곳곳에 국제공항이 늘어나면 더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상대방을 방문하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월드컵 공동 개최와 같이) 양국이 하나가 돼 무엇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중국 붐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미국도 가장 열중하는 곳이 중국이다. 일.중 관계가 한층 두터워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일본.중국.북한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협력해 발전할 수 있는 기본틀을 짜는 것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돼도 '4국(한.일.중.북한)+2국(미국.러시아)'의 6자 협의 틀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본틀을 만들기 위해 가장 끈기있게 노력해야 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역사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이 틀을 짤 때 역사문제를 올바로 인정하고 인식해야 한다. 일본은 최근 한국.중국 등에 정상회담을 정기적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일본은 먼저 역사인식에 대한 국내 문제를 정리하고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오랜 친분이 잘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이 30여년 전 일본에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은 뒤 깊은 감명을 받았다. 김 전 대통령 납치사건이 터졌을 때 구명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 후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는 서로 편지를 보내 격려하기도 했다."

도쿄=오대영.예영준 특파원

◇고노 요헤이 의장은=13선으로 자민당 총재.외무장관 등을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일본 체류 도중 한국 정부에 의해 납치됐을 때 구명운동에 적극 나섰다. 대표적 지한파(知韓派) 정치인 중 한명이다. 2002년 4월에는 아들인 고노 다로(河野太郞.41) 자민당 의원으로부터 간의 일부를 이식받는 수술을 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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