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m 두께 펄이 냉장고 효과, 썩지 않은 거북선 나올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웨덴 스톡홀롬 바사박물관에는 333년 전 침몰한 군함 '바사호'가 원형에 가깝게 복원·전시돼 있다. 바사호는 배수량 1300t, 적재대포 64문, 탑승인원 450명으로 1600년 대 스웨덴의 대표적 군함이었다. 하지만 바사호는 출항 후 2시간 만에 포문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수심 30m 바닷속에 침몰하고 말았다. 스웨덴 정부는 1956년 바사호의 침몰 지점을 탐사해 5년에 걸친 인양작업 끝에 발굴에 성공했다. 노르웨이도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 북해를 휩쓸었던 바이킹족의 전함 오세베르그호와 고코스타호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두 함선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배였다. 수백 년 내지는 1000년 전 바닷속에 가라앉은 목선이 썩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침몰 지점의 수심과 염도가 낮고, 선체가 펄 층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처음으로 일본 수군에 참패한 '칠천량해전' 에서 거북선 5~7척이 칠천도 앞바다 수몰됐다. 이 때 침몰한 거북선도 썩지 않고 남해 바다 어딘가에 묻혀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거북선의 잔해를 찾기 위해 요즘 칠천도 앞바다에선 탐사 작업이 한창이다. 탐사팀은 4m 깊이의 펄이 거북선 선체의 부식을 막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거북선을 전시할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 중앙SUNDAY가 거북선 발굴 작업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했다. 다음은 기사 전문.

거북선과 조선 수군의 주력 함선이었던 판옥선(사진 아래).

1597년 7월 16일 새벽 경남 거제도 북쪽 칠천도 앞바다. 500여 척의 일본 수군 함선의 기습 공격이 시작됐다. 예상치 못한 공격으로 조선 수군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수군 전사자 1만여 명, 거북선 5~7척과 판옥선 160여 척 대파. 이순신 장군을 대신해 함대를 지휘하던 원균이 전사하고 왜군을 피한 배는 10여 척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을 통틀어 조선 수군의 유일한 패배로 기록된 칠천량 해전이다.(이충무공전서, 선조실록 등)

400여 년이 지난 2009년 3월 26일. 거제도 실전리 부두에서 2㎞ 남짓 떨어진 칠천도 앞바다엔 소형 탐사선이 떠 있었다. ㈜한국수중공사 소속 21t급 탐사선 101호다. 선장과 잠수부, 수중유물 연구원 등 8명의 탐사팀은 거북선 발굴 작업에 한창이었다.

발굴 작업은 지난해 6월 시작됐다. 경남도가 10억여원을 투입한 이 프로젝트엔 해양탐사 전문기관인 ㈜한국해양과학기술·㈜한국수중공사와 데이터 처리를 담당하는 ‘빌리언 21’ 등 민간 전문업체 세 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고 있다. 현재 거북선은 물론이고 임란 때 수백 척이 건조돼 주력함 역할을 한 판옥선조차도 단편적인 기록으로만 전해질 뿐 실체는 남아있지 않다.

돈·시간 태부족, 정부 지원 절실

탐사선에 올랐다. 두 명의 잠수부가 주황색 생명줄인 ‘산소 공급선’을 매달고 수심 12m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30분쯤 흘렀을까. 잠수부들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탐사선으로 몸을 끌어 올렸다. 19년 잠수 경력을 갖고 있는 박동춘(56)씨는 칠천도 앞 바닷속을 이렇게 묘사했다.

“가시거리 3m 정도인 해저는 온통 검은색 펄 밭이다. 수온은 10.9도로 5분 이상 물속에 있으면 추위가 느껴진다.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부표 아래 설치된 사방 3m 펜스 밖으로 펄을 퍼내면 그 주변은 금세 검은 물로 변한다.”

탐사선에서 보면 잔잔하게만 보이지만 물속에선 한바탕 난리가 난다. 잠수 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한국수중공사 최병용(50) 기술이사는 “어둠 속에서 펄을 퍼내는 일은 육지 작업에 비해 5~6배 정도 힘이 더 든다”며 “베테랑 잠수부들조차 여간해선 꺼리는 작업”이라고 했다.

과연 400여 년 전 침몰한 거북선이 썩지 않고 남아 있을까. 수중유물 전문가인 박상언(35) 연구원은 “목선이라도 펄 속에 묻히면 잘 썩지 않는다”며 “펄 속에선 산소가 차단돼 나무를 갉아먹는 미생물과 목재 선체에 구멍을 내는 좀조개가 번식하지 못해 거북선과 판옥선 등 침몰선의 뼈대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2006년 거북선 발굴 사업을 처음 경남도에 제안한 이종원(68·부산잠수센터 대표)씨도 “펄이 냉장고와 같은 역할을 해 나무가 썩지 않는다”며 “국내외 비슷한 펄 층에서 수백 년 전에 침몰한 목선이 발견된 예가 많다”고 지적했다. 스쿠버 다이버로 평생 바닷속을 탐험해 온 이씨는 탐사선에서 잠수 작업에 대한 기술적 조언을 담당하고 있다.

이씨의 말처럼 수백 년 된 침몰선이 발굴된 사례는 많다. 1628년 독일 해군과 전투를 하기 위해 건조된 스웨덴 군함 바사호가 출항 중 수심 30m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이 배는 침몰한 지 333년 만인 1961년 썩지 않고 통째로 인양됐다. 또 서해 신안 앞바다에선 최근까지 수백 년 전 좌초된 목선과 거기에 실린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700여 년 전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일본 정벌을 위해 동원한 대규모 함선의 잔해가 2005년 일본 근해에서 인양된 적도 있다. 공통점은 수심이 얕을 뿐 아니라 낮은 염도의 바닷물과 펄에 묻혀 있었다는 점이다.

고주파 음파탐지기로 펄 속 탐지

칠천도 앞바다와 같은 내해(內海)는 조수 간만의 차가 거의 없어 1년에 약 1~1.5㎝의 펄이 쌓인다고 한다. 탐사팀은 칠천량 해전으로부터 410년이 지난 현재는 약 4~5m의 펄이 침몰선 위에 쌓여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침몰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 이번 발굴 작업의 핵심이었다.

침몰 지점을 찾기 위해 탐사팀은 수중 탐사 장비 네 가지를 활용한다. 우선 ‘멀티빔’을 이용해 해저 지형을 조사했다. 멀티빔에서 해저로 쏜 음파가 튕겨져 올라오면 그 파동을 분석해 해저 지형을 파악한다. 이 장비는 해저 표면의 지형을 평면 그래픽으로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사이드스캔소나’라는 장비로 해저면 영상 조사도 이루어진다. 이 장비 역시 음파를 이용해 해저면을 스캔하는 데 사용된다. 멀티빔과 달리 해저면에서 튕겨져 나온 음파를 분석해 컴퓨터가 3차원 영상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다. 사이드스캔소나는 해저면에 노출된 물체를 판별할 수는 있지만 펄 속까지는 침투할 수 없어 탐지에 한계가 있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지층탐사기’라는 장비다. 고주파를 펄 속에 쏴 물체가 있는지를 판별해낸다.

하지만 이런 장비는 물체의 유무만 판별해낼 뿐 그 이미지를 영상으로 보여 주지는 못한다. 금속 물질을 찾기 위한 지자기 탐사기기인 자력계도 동원된다. 소형 미사일 모양의 자력계는 각종 총통이나 거북선 상판처럼 쇠로 만들어진 물체를 감지해 낸다.
수중 탐사 결과 칠천도 해역 767개소에 정체 불명의 물체가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차 탐사 자료를 면밀히 분석한 탐사팀은 이 중 거북선 매몰 유력 지역으로 57곳을 재선별했다. 지난해 말까지 펄층이 1m 이하로 비교적 얕은 25곳은 전문 잠수부가 동원돼 펄층을 모두 걷어내고 매몰된 물체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마쳤다. 그 과정에서 44점의 자기류를 발견하는 성과가 있었다.

국립진주박물관 강대규 관장은 “41점은 18~19세기 것이고 단 3점이 16세기에 사용된 밥그릇과 술병”이라고 했다. 박상언 연구원은 “이 세 점의 그릇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시기와 비슷한 때에 제작된 것으로 판명됐지만 당시 이곳에 정박해 있던 조선 함대에 실려 있었던 것인지는 판별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일본선 700년 전 몽골 함선 건지기도

나머지 32곳에 대해선 올 초부터 발굴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발굴한 지역에 비해 펄층이 2m 이상으로 두꺼운 탓에 작업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최병용 기술이사는 “진공청소기처럼 펄을 빨아들이는 ‘에어리프트’라는 기계를 사용하려 했지만 인근 굴 양식장에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수작업으로 일일이 펄을 걷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한 곳을 발굴하는 데 최소 2~3일이 걸린다. 탐사팀은 5월 말까지 발굴 작업을 끝낼 계획이다.

거북선을 찾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거북선 발굴 프로젝트 담당자인 경남도청 김종임 담당관은 “성공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지만 거북선과 판옥선이 칠천도 앞바다 속에 묻혀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며 “발굴 지역이 넓어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명규 거북선 발굴탐사단장은 “이번 탐사를 미친 짓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탐사할 가치가 있다”며 “거북선 탐사에 중앙정부의 관심과 예산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가짜 총통 사건으로 정부 발굴단 해체 악몽

중앙정부가 거북선 발굴에 직접 나서지 않는 건 과거의 실패 경험 때문이다. 70년대 후반 해군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려 아래 거북선 발굴에 나선 적이 있다. 탐사 작업은 해군사관학교의 조성도 교수 주도로 진행됐다.

당시에는 해저 탐사 장비가 변변치 않아 과학적 탐사가 어려운 시기였다. 이후 박 전 대통령 서거로 거북선 발굴도 유야무야됐다. 89년엔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충무공 해저유물 발굴단이 창설돼 탐사가 이뤄졌다. 침몰선 잔해로 추정되는 목재 일부가 나오긴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그러던 중 발굴단장인 황 모 대령이 92년 8월 가짜 ‘귀함(龜艦)별황자총통’을 통영시 한산면 문어포 앞바다에 떨어뜨렸다가 인양한 것처럼 속인 사실이 드러나 발굴단은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로는 거북선 발굴에 대해 누구도 공개적으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원광대 사학과 나종우 교수는 “거북선을 찾아 실제 모양을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번 탐사는 ‘신화의 역사’를 ‘살아 있는 역사’로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둬야 한다”고 말한다. 나 교수는 또 “거북선의 파편을 찾는 일은 잃어버린 시대정신을 찾는 중요한 작업으로 난세에 ‘구국’을 상징하는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해 지도층 인사들이 되돌아볼 때”라고 말했다.

거제=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